내가 읽은 시

병뚜껑 - 천수호

공산(空山) 2023. 11. 27. 10:24

   병뚜껑

   천수호

 

  

   사방에 병()이 있다 알록달록한 뚜껑들파랑뚜껑 빨강뚜껑 주황뚜껑 어느 병이 잡히나나무젓가락을 퉁겨 맥주병을 따던 여릿한 손목의 그녀처럼 통쾌하게내장이 줄줄 흐르는 꽃게 등딱지 따듯 조심스럽게병의 맛은 풍부하고 목이 탄다 꽉 찬 듯 모자란 용량의 말이 출렁이는 병들.

   언니가 갓 딴 병 앞에 앉아있다 탄산 안개에 휘감긴 병언니는 병 주둥이가 안보여 웃고 나는 병의 눈알이 안보여 운다 운명은 병 하나 앞에 놓고 입과 눈을 멋대로 놀리는 것귀가 얇아진 이쪽 끝에서 코가 무뎌진 저쪽 끝숱한 병들이 손목 앞에서 깝죽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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