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믹담*
―부인사
김상환
겨울 산사를 찾았다
부인은 없고
부인과 함께 바라본 느티가 묻는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지?
그럴 땐 나를 봐 무를 봐,
라고 곁에 선 왕벚이 거든다
나무에 새겨진 칼날의 허
공에는 마침내의 도가 있다
한쪽 귀가 깨진 서탑
풍경과 바람과 석등의 비밀이
부인에 있다
대웅전 지붕 끝 치미가
하늘을 오르다 말고
산신각 앞에 내려와 앉는다
흠도 티도 없는 절집 아침
마당과 마음을 돌고 도는 나는
포도나무 잎 진 자리
떨켜를 생각한다
저잣거리로 내려가는 길
눈의 흰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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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브리어(מכתם, Michtam). 조각에 새겨 놓은 금언이나 지혜의 말씀.
―『왜왜』서정시학, 2023. 8.
■ 2023. 9. 25. 시지 '페이스포포' 카페에서 시집 출판을 축하하며 몇몇 시인들이 저자와 함께 차를 마셨다. 투병 중인 한 시인을 위로하며 경산에서 점심으로 추어탕을 함께 먹은 뒤에 옮긴, 조촐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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