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저무는 황혼 - 서정주

공산(空山) 2022. 10. 8. 09:59

   저무는 황혼

   서정주

 


   새우마냥 허리 오그리고
   뉘엿뉘엿 저무는 황혼을
   언덕 넘어 딸네 집에 가듯이
   나도 인제는 잠이나 들까.

   굽이굽이 등 굽은
   근심의 언덕 너머
   골골이 뻗치는 시름의 잔주름뿐
   저승에 갈 노자도 나는 없느니.

 

   소태같이 쓴 가문 날들을
   여뀌풀 밑 대어 오던
   내 사랑의 봇도랑물
   인제는 제대로 흘러라 내버려 두고,

   으시시히 깔리는 머언 산 그리매
   홑이불처럼 말아서 덮고
   엇비슥이 비끼어 누워
   나도 인제는 잠이나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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