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40, 03,000 입산 후 등산로를 찾다
지난번엔 파계사 쪽으로 입산하여 파계재에서 동봉까지 팔공산 주능선 6.2km를 종주하고 나서 동화사 집단시설지구 쪽으로 하산했었다. 그것이 지난 1월이었다.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뒤, 나는 오늘 동봉에서 관봉까지 주능선 7.3km를 종주했다. 물론 오늘 걸은 거리는 이 주능선 구간에다 입산부터 동봉까지의 등산 구간과 관봉에서 주차장까지의 하산 과정을 더하면 13km가 넘을 것이다.
오늘 아침 급행1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려서 지난 1월에 하산했던 곳으로 입산하려고 했으나 집단시설지구 쪽의 등산로 입구를 찾지 못하고, 수태골 쪽으로 걸어 모래재*를 조금 넘어가다가 오른쪽 산자락으로 들어섰다. 등산로가 없어도 조금만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것이 거미줄처럼 얽힌 요즘의 등산로이다. 만보계 앱이 3,000보를 나타낼 때쯤 좁은 등산로를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난 겨울에 내가 캄캄한 밤에 하산했던 그 등산로였다.
* 모래재 : 팔공산 수태골과 동화사 집단시설지구 사이에 있는 고개. 예전에는 온통 모래로 덮여 있었고 오솔길이 꽤 가팔랐으나, 순환도로가 나고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면서 지금은 많이 낮아졌다.
10:10, 09,100 수태골-염불암 갈림길에 도착
단풍이 한창인 산자락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으며, 오늘도 나는 천천히 걸었다. 케이블카 종점이 있는 신림봉과 낙타봉을 거쳐 계속 동봉을 향하여 능선길로 올라갔다. 9천보쯤 걸었을 때 수태골 쪽과 염불암 쪽에서 올라오는 길이 만나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쯤에서 나는 아주 오래 전에,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에 가 본 곳이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그곳을 한번 찾아보고 싶어졌다. 아마도 아버지는 산일**을 하러, 엄마는 산나물을 뜯으러 어린 아들과 셋이 함께 도시락을 싸서 소풍을 겸해 산에 온, 늦은 봄날이었을 것이다. 큰 고개를 하나 넘었었는데, 거기엔 우리 마을 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별천지가 펼쳐져 있었다. 완만해서 펑퍼짐하고 넓은 비탈엔 처음 보는 아름드리 곧은 낙엽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고, 그 부드러운 잎이 파릇파릇 돋아난 낙엽송 그늘 아래 갖가지 산나물과 풀들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다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그 숲속엔 함박꽃과 복주머니난(개불알꽃)도 더러 피어 있었고, 엄마는 그중에 몇 송이를 꺾어 내 손에 쥐여 주셨을 것이다. 아버지가 꺾어 주신 한껏 물오른 송기(松肌)도 맛보았을 것이다. 더덕 향기는 주위에 가득했을 것이고... 아버지도 엄마도 그리고 나도 가장 행복했던 날 중의 하루였을 것이다. 그때 넘었던 고개가 바로 이 갈림길 부근이었을 것 같은데,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그런 지형을 오늘은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고개의 이름이 '가리재' 또는 '가래재'***였지만, 지금은 그런 지명조차도 세월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다음 기회엔 여기서 염불암 쪽으로 한번 헤매어 보리라.
지난 겨울, 염불봉 부근에서 길을 잃고 다시 동봉으로 돌아가 캄캄한 밤에 내려오던 때를 생각했다. 바로 이곳에서 그 낯설고 험한 신림봉 쪽으로 내려가지 말고 0.7km만 내려가면 신작로가 있을 염불암 쪽이나 길을 잘 아는 수태골 쪽으로 내려갔었더라면 그렇게 고생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 산일 : 산에서 하는 일. 내 고향에서는 주로 이른 봄에 그 해의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훌찌이(쟁기), 써레, 지게, 도리깨, 광주리, 코꾼지(코뚜레) 등의 농기구를 만드는 데 쓸 나무와 낫, 괭이 등 연장의 자루를 만드는 데 쓸 나무를 베는 일을 일컫는다. 농가 연중행사 중의 하나였다.
*** 가리재 또는 가래재 : 아마도 지형이 가래처럼 넓고 펑퍼짐하게 생겨서 '가래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10:50, 10,600 동봉에 올라서다
9개월만에 동봉에 올라섰다. 이정표에는 갓바위까지 7.3km라고 되어 있다. 파계재까지의 거리보다 1.1km가 더 멀지만 아직 11시도 안 되었으니 오늘은 해가 지기 전까지 충분히 갈 수 있을 것이다. 구름이 많아서 전망이 트이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구름은 금방 또 걷힐 수도 있겠지만 바람이 세고 사람들로 붐벼서 나는 서둘러 동봉을 떠났다.
12:50, 16,000 도마재(신녕재) 통과
신녕재라고만 알고 있던 이 고개가 원래 이름이 도마재라고 한다. 동봉에서 2.7km를 왔고, 갓바위까지는 4.6km를 더 가야 한다. 이정표에는 여기서 신녕 치산계곡의 '공산폭포'까지 3.0km, '수도사'까지는 4.5km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 고개는 예전에 공산면 사람들이 신녕과 영천으로 내왕하던 중요한 통로였다. 신녕에는 큰 5일장과 우시장이 있었는데, 나의 아버지도 새 식구가 될 송아지와 함께 머나먼 산길을 걸어 이 가파른 준령을 누차 넘으셨을 것이다. 지금은 농촌 인구가 줄고 생활환경이 바뀌어 그 우시장은 없어졌고, 5일장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14:20, 21,600 느패재 통과
동봉에서 염불봉과 도마재(신녕재)와 삿갓봉을 지나 느패재까지 오는 동안은 일요일인데도 등산객이 많지 않아서 걷다가 드문드문 만날 정도였다. 염불봉 부근에서는 바람을 막아주는 바위 앞에서 점심으로 싸온 쑥떡과 군고구마와 단감을 먹었다. 오래 전에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무렵에 가족이 함께 이 길을 걸은 적이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서 그때의 길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없었던 계단들이 많이 놓여 있어서 지금은 걷기에 좋았다. 완만하고 평탄한 길이 많았지만 2만보를 넘기니 다리가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를 걸어서 벌써 다리가 뻐근해지다니. 앞으로는 자전거만 탈 것이 아니라 등산도 자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전거 탈 때와 등산할 때 쓰는 근육은 다를 테니까. 아직도 갓바위는 1.8km나 더 가야 한다.
여기서 이정표에 표시된 거리에 의문이 생겼다. 저 거리 표시가 평면 지도상의 거리인가, 아니면 우리가 실제로 산을 오르내리며 걷는 거리를 표시한 것인가? 아무래도 전자인 것 같았다. 등산로를 걸어보면 이정표에 표시된 거리보다 훨씬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산비탈의 경사도를 삼각함수에 적용하여 계산하거나 구불구불한 등산로를 줄자로 잰 거리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6:00, 26,000 관봉 도착
오후 네 시에 관봉(갓바위)에 도착했다. 저 부처님을 뵈온 지 얼마만인가, 예전의 메모를 찾아보니 2014년 1월 초였다. 9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세월은 언제나 그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것인가 보다. 부처님은 마당에 엎드려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 주느라 여전히 바쁘신 것 같았고, 그 소원들을 더 자세히 듣기 위해 지금도 한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앉아 계셨다.
16:50, 30,000 버스 주차장 도착
오늘은 총 3만보 남짓 걸었다. 다리가 뻐근하고 발바닥이 조금 아팠을 뿐이지만, 무릎에 실릴 체중을 생각해서 지팡이를 짚어가며 주차장까지의 가파른 돌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이젠 그렇게 조심해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발바닥도 다리도 위장과 심폐기능도 9개월만의 테스트를 일단은 무난히 통과한 셈이었다. 401번 버스를 타고 백안동을 지나 구암마을 앞을 지날 때, 해는 공산(公山)을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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