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대식

주홍글씨

공산(空山) 2022. 9. 20. 18:10

   주홍글씨

   우대식

 

 

   온 강이 얼었습니다

   그대에게 가는 모든 길이 열렸습니다

   등불이 켜진 작은 나무집에서 편지를 씁니다

   “모든 길이 열렸지만 저는 두렵습니다.

   물결이 마주치다 솟아오른 채 얼어버리듯

   내 마음결도 불안정합니다

   그대에게 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만,

   수레바퀴 돌아가는 소리

   언 강 눈 밟는 소리

   봄으로 가는 채찍 소리

   그대에게 가는 길을 다시 허무는 소리

   싸락눈 위에 찍힌

   주홍글씨

   “여기 자신의 길조차도 가지 못한 한 영혼이 있다.

   새소리에도 놀라는 어리석은 사랑이 있다

   언 강이 녹아 풀어졌을 때

   또다시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겁 많은 사내가 있다

 

 

   ―『설산국경중앙북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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