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
우대식
온 강이 얼었습니다
그대에게 가는 모든 길이 열렸습니다
등불이 켜진 작은 나무집에서 편지를 씁니다
“모든 길이 열렸지만 저는 두렵습니다.
물결이 마주치다 솟아오른 채 얼어버리듯
내 마음결도 불안정합니다”
그대에게 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만,
수레바퀴 돌아가는 소리
언 강 눈 밟는 소리
봄으로 가는 채찍 소리
그대에게 가는 길을 다시 허무는 소리
싸락눈 위에 찍힌
주홍글씨
“여기 자신의 길조차도 가지 못한 한 영혼이 있다.
새소리에도 놀라는 어리석은 사랑이 있다
언 강이 녹아 풀어졌을 때
또다시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겁 많은 사내가 있다”
―『설산국경』중앙북스,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