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통
우대식
전생에 나는
낙타 등에 매달린 누란의 물장수
아라베스크의 자세로 화석이 된 누란의 물장수
모래로 된 얼굴로 장사를 나가
기울어진 돌집으로 들어가는 당신의 해진 옷깃에 물을 붓는다
초승달이 뜰 때
물통의 남은 물을 신께 바치고
물값을 내라고 멱살을 잡고 울고불고
낙타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호수처럼
먼 데 이르면
누구의 발자국도 없다
전생에 나는 낙타도 잃고 물통도 버린
누란의 물장수
—계간 《가히》 2024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