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눈길 1 - 정 양

공산(空山) 2021. 11. 28. 21:22

   눈길 1

   정 양

 

 

   흐린 하늘 밑
   들 건너 마을이 자꾸 멀어 보인다
   눈에 묻힌 길은 아예 잃어버렸다
   들판을 무작정 가로지른다
   발목이 아무 데나 푹푹 빠진다

   잃어버린 길 위에 까마귀 떼
   까마귀 떼도 길을 잃었나보다
   어디로 날아가지도 않고
   눈밭에 우두커니들 서 있거나
   느릿느릿 서성거린다

   길이 보여도 길을
   잃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고
   길이란 잃어버리려고 있는 거라고
   구구구구 두런거리며 눈 덮인 들판을
   조금씩 비껴주는 까마귀 떼

   들끓는 검은 피에 취하여

   차라리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눈길을 여는 까마귀를 따라간다
   또 눈이 오려는지
   먼 마을 연기가 낮게 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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