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업어준다는 것 - 박서영

공산(空山) 2021. 10. 12. 12:22

   업어준다는 것

   박서영(1968∼2018)

 

 

   저수지에 빠졌던 검은 염소를 업고

   노파가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등이 흠뻑 젖어들고 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염소와 눈을 맞추며

   자장가까지 흥얼거렸다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

   그의 감춰진 울음이 몸에 스며든다는 것

   서로를 찌르지 않고 받아준다는 것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에

   등줄기가 청진기처럼 닿는다는 것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약국의 흐릿한 창문을 닦듯

   서로의 눈동자 속에 낀 슬픔을 닦아주는 일

   흩어진 영혼을 자루에 담아주는 일

 

   사람이 짐승을 업고 긴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한없이 가벼워진 몸이

   젖어 더욱 무거워진 몸을 업어 주고 있다

   울음이 불룩한 무덤에 스며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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