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정착 - 김지녀

공산(空山) 2021. 10. 12. 12:34

   정착

   김지녀

 

 

   노트에 배 안에서 읽은 책의 제목을 적었다

   이것이 기록의 전부다

   노트는 열려 있고

 

   한 달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이 섬이 나에겐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사하기가 어렵다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해안선이 복잡했다

 

   이 섬으로 들어오는 일은 좋았다

   내가 기억할 수 없는 시간을 간직한

   좁고

   비천한 골목을 내고

   난파 직전의 배처럼 바다에 떠 있는

   섬이

   이미 있었다는 것이, 나를 일렁이게 했으므로

 

   방금 기이한 새소리를 들었다

   새가 보이지 않아서

   음악과 같았다

   새가 보이지 않아서

   음악과 같았다

 

   한 달이 넘도록 책의 제목만 적힌 노트에 섬, 이라고 적었다

   조금 일그러진 모양으로 섬이 커졌다

   길어졌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 섬은 무한한 점들로 이루어져 있다

   노트에 줄 하나가 그어졌다

 

   한 달이 지났을 때

   창문의 테두리 하나를 나는 완성했다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길 1 - 정 양  (0) 2021.11.28
나의 신발이 - 신경림  (0) 2021.10.12
업어준다는 것 - 박서영  (0) 2021.10.12
나팔꽃 - 권대웅  (0) 2021.10.07
하지 - 채상우  (0) 2021.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