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에는 뒷산에 키가 큰 나무들이 많지 않았다. 등성이 여기저기에는 모래 땅이 그대로 드러난 곳도 많았다. 지금은 소나무, 아카시아,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산벚나무 같은 교목(큰키나무)들이 울창하여 고사리나 도라지 같은 산나물이나 약초를 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진달래나 철쭉 같은 관목(직은키나무)들의 개체수도 많이 줄었다. 그런데 떡갈나무는 교목에 속하는데도 온난화 기후 탓인지 예전보다는 많이 줄어서 팔공산에선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얼마 전 대구수목원에 갔을 적에 오랜만에 떡갈나무를 만나게 되어 반가웠었다. 그 나무는 기후변화 취약 수종으로 모니터링 중이라는 슬픈 내용의 팻말을 달고 있었는데,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 나무를 한 그루 심어 가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떡갈나무는 참나무류 중에 잎이 가장 넓고 두꺼워서 시원스럽고 의젓한 풍채다. 그래서 오늘은 텃밭의 일을 대강 끝낸 뒤 우선 팔공산 자락인 동네 동산에 올라 옛날에 자주 보던 떡갈나무들이 있는지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나지막한 산등성이의 숲에 들어서서 훑어보며 지나가는데 잎사귀가 내 손바닥만한 참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었다. 예전의 기억과 최근에 공부한 지식을 동원하여 잎을 살펴보니 그것은 신갈나무였다. 잎사귀의 뒷면에 육안으로 보이는 털이 없고 잎의 두께가 얇았던 것이다. 떡갈나무는 잎의 크기가 작은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와는 구별이 쉽게 되지만, 잎이 큰 신갈나무와는 구별이 쉽지 않은데, 도토리 깍지의 모양이나 잎 뒷면의 털과 잎의 두께, 잎자루의 길이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다른 등성이로 들어서는데, 아까 보았던 신갈나무와는 잎이 달라보이는 나무 한 그루가 비탈의 소나무 사이에 서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떡갈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하늘을 다 가리고 있어서 우듬지쪽의 원줄기는 썩었고, 아래쪽 가지만 몇 개 살아 있었으며 맺은 도토리도 없었다. 점점 더 하늘을 가리는 소나무 아래서 겨우 버티며 살아왔으니 밑동의 굵기가 내 팔뚝만했지만 나이는 꽤 많을 것이다. 잎 뒷면은 솜털이 많아서 흰 빛이 돌았고 가장자리의 톱니는 보다 더 둥글고 컸으며 잎살(엽육)은 두꺼웠다. 부근에 어린 나무가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없었다. 도토리가 떨어져 발아를 했다고 해도 그늘이 너무 짙어서 자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떡갈나무를 한 그루 만날 수 있어서 기쁘고 즐거웠다. 그동안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 버렸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팔공산에서 떡갈나무를 만난 것은 몇 십 년만의 일인 것 같다. 다음에는 어린 떡갈나무가 있는지 다시 찾아볼 생각이다. 어딘가에 다람쥐가 훗날을 위해 도토리를 심어 발아를 시킨 묘목이 있을 것이다. 그 묘목을 한 그루 얻어다 마당 구석이나 텃밭 가에 심을까 한다. 그것이 어려우면 올가을에 나는 도토리가 열린 떡갈나무를 찾아서 또 헤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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