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멀리 앞산 밑 떡방앗간에 쑥떡을 하러 간다는 아내와 처형을 쑥 보퉁이와 함께 차로 모시고 갔지만 떡방앗간 주인장과의 약속이 어긋나 너덧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부근의 선지국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 거기서 멀지 않은 대구수목원으로 갔다. 그러잖아도 오랜만에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인연은 늘 이렇게 뜻밖에 다가오는 것이었다. 쓰레기 매립장 위에 조성된 이 수목원이, 한 십오 년만에 다시 와 보니 많이 울창해져 있었다. 산자락으로 난 산책로를 좀 걷다가 내려와서 아내와 처형은 나무 그늘의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수목원과는 아무 상관없는 수다 보따리를 풀기 시작하였고, 나는 몇몇 떨기나무와 큰키나무들을 만나기 위해 혼자서 수목원을 헤매기 시작하였다.
먼저 오솔길 옆에 서 있는 낯선 떨기나무가 눈에 띄었는데 '분홍괴불나무(아놀드레드)'와 '뜰보리수'였다. 낙엽활엽 떨기나무인 아놀드레드는 인동과라서 잎과 열매의 모양이 인동과 비슷했으나 익은 열매가 검정색이 아니라 붉은색이며, 줄기가 덩굴이 아닌 것이 특징이었다. 이름표에는 하버드대학교 부속 아놀드 식물원에서 개량한 품종이라고 쓰여 있었다. 5월에 진분홍 꽃이 피므로 '분홍괴불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열매는 9월에 익는다고 되어 있었지만 여기선 기후가 달라선지 6월 상순인 지금 한창 익어 있었다. 뜰보리수는 일본 원산의 낙엽활엽 떨기나무로, 주로 공원에서 볼 수 있는 관상수라고 한다. 열매의 크기가 우리나라 토종 보리수와 왕보리수의 중간쯤으로,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 예뻤다.
문득 갈매나무를 찾아 보고 싶어졌다. 워낙 넓은 수목원이라 엄두가 나지 않아서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했더니, 이 수목원에 갈매나무는 없고 '참갈매나무'만 활엽수원 쪽에 있다는 대답이었다. 활엽수원으로 가서 한참 헤맨 끝에 참갈매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세 그루가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줄기가 구부정하고 잎이 달린 가지는 축 처져 있었다. 백석의 시「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나오는 그 '굳고 정한 갈매나무'의 이미지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어 보였다. 나는 아직 갈매나무는 본 적이 없지만 그 나무도 이 참갈매나무와 수형이 비슷할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나의 텃밭 바위 옆에 서 있는 갈매나무과의 '짝자래나무'가 차라리 백석의 시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었다. 십수 년 전부터 갈매나무인 줄 알고 키워 온 나무가 짝자래나무라는 것을 나는 최근에야 알았다. 그 나무는 수형이 빳빳하고 목질이 매우 단단하여 연장의 자루로 쓰기에 좋다. 어쩌면 백석 시인도 그 짝자래나무를 갈매나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참고로, 한반도에 자생하는 갈매나무과 식물에는 갈매나무, 참갈매나무, 돌갈매나무, 좀갈매나무(한라산), 짝자래나무, 산황나무, 털갈매나무 등이 있다고 한다.
그밖에, 오늘 수목원에서는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등 참나무류의 구별법도 배웠고, 그동안 쉽게 접하면서도 이름을 모르고 지냈던 멍석딸기와 산딸나무도 알게 되었다. 조록싸리와 족제비싸리는 콩과이지만 광대싸리는 과가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대극과). 내가 미루나무로 알고 있던 나무는 '양버들'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서 있었고, 처음 본 호프는 뽕나뭇과였는데, 환삼덩굴을 많이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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