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악어
서영처
혼자 지키는 집,
늪으로 변해버린다
땀이 거머리처럼 머리 밑을 기어다니고
눅눅한 공기가 배밀이를 하며 돌아온다
수초가 슬금슬금 살을 뚫고 자라난다
피아노 뚜껑을 연다
쩌억, 아가리를 벌리며 악어가 수면 위로 솟구친다
여든여덟 개의 면도날 이빨이 덥석 양팔을 문다
숨이 멎는다
입에선 토막 난 소리들의 악취
손가락은 악어새처럼 건반 위를 뛰어다녔는데
놈은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 내동댕이친다
물 깊이 물고 내려가 소용돌이 일으킨다
수압에 못 이긴 삶은 흐물거린다
대궁 아래 숨어 있는 눈망울
나는 수초 사이 처박혀 한없이 불어 터진다
어디선가 웅성거림 들려오는데
핏물 흥건한 이곳으로
물거품이 궤적을 일으키며 다가온다
죽어라 헤엄치다 돌아본 늪엔
수련이 가득
구설수처럼 피어 있다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둑길 - 함명춘 (0) | 2020.11.09 |
---|---|
빅풋 - 석민재 (0) | 2020.11.09 |
검은 빛 - 김현승 (0) | 2020.11.06 |
구두 한 켤레의 시 - 곽재구 (0) | 2020.11.06 |
한 개의 밤 - 이상 (0) | 2020.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