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個의 밤
이상
여울에서는 도도한 소리를 치며
비류강이 흐르고 있다.
그 수면에 아른아른한 자색층이 어린다.
십이봉 봉우리로 차단되어
내가 서성거리는 훨씬 후방까지도 이미 황혼이 깃들어 있다
으스름한 대기를 누벼가듯이
지하로 지하로 숨어버리는 하류는
검으틱틱한 게 퍽은 싸늘하구나.
십이봉 사이로는
빨갛게 물든 노을이 보이고
종이 울린다.
불행이여
지금 강변에 황혼의 그늘
땅을 길게 뒤덮고도 오히려 남을손 불행이여
소리날세라 신방에 창장을 치듯
눈을 감은 자 나는 보잘것없이 낙백한 사람.
이젠 아주 어두워 들어왔구나
십이봉 사이사이로
하마 별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 아닐까
나는 그것을 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
차라리 초원의 어느 일점을 응시한다.
문을 닫은 것처럼 캄캄한 색을 띤 채
이제 비류강은 무겁게도 도사려 앉는 것 같고
내 육신도 천근 주체할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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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강 : 대동강의 지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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