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다시 해바라기 - 김중식

공산(空山) 2020. 7. 21. 14:02

   다시 해바라기

   김중식 (1967~ )

 

 

   이 세상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가자,

   해서 오아시스에서 만난 해바라기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겠으나

   딱 한 송이로

   백만 송이의 정원에 맞서는 존재감

   사막 전체를 후광(後光)으로 지닌 꽃

 

   앞발로 수맥을 짚어가는 낙타처럼

   죄 없이 태어난 생명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성모(聖母) 같다

   검은 망사 쓴 얼굴 속에 속울음이 있다

   너는 살아 있으시라

   살아 있기 힘들면 다시 태어나시라

 

   약속하기 어려우나

   삶이 다 기적이므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사막 끝까지 배웅하는 해바라기

 

 

    『울지도 못했다 문학과지성사,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