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균

약속이 어긋나도

공산(空山) 2019. 6. 28. 10:22

   약속이 어긋나도

   전동균

 

 

   칸나꽃 피어나고

   흰곰들은 부서지는 빙판을 걸어가요

 

   내가 새매라고, 예티라고, 부들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저를 무엇이라고 생각할까요

   그들의 형제인 나를

 

   왜 내게는

   소리 없이 소낙비를 뚫고 가는 날개가 없을까요

   어떻게 나는

   인간의 육신과 마음을 얻었을까요

   구겨진 종이 같은

   재를 내뿜는 거울 같은

 

   약속은 어긋나고 예언은 늘 빗나갔어요

   맨발의 지팡이들은 오래전에 추방되었어요

 

   잠들기 전에

   내 무덤을 환하게 여는 눈빛을 주세요

 

   무덤에 절을 할 거예요

   돌에 물을 뿌릴 거예요

 

   조금씩 달라지는 별들의 표정을 지켜볼 거예요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2019. 6.

'전동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 있는 것보다 더 곧게  (0) 2019.07.24
예(禮)  (0) 2019.07.16
벙어리 햇볕들이 지나가고  (0) 2019.06.28
1205호  (0) 2018.11.29
마른 떡  (0) 2018.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