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5호
전동균
수리를 하긴 했지만 좀 낡았답니다
이 갈색 탁자는 아버지가 만드신 것
마른 꽃들이 꽂힌 작은 항아리는 어머니가 아끼시던 거예요
제 것은 별로 없어요
맞아요, 그림 속의 저 나귀는 잠 씨*의 농장에서 도망친 거죠
오후 세 시만 되면 어디론가 사라지곤 해요 물통을 지고
마루가 삐걱거려도 무시하세요 소심한 것들은 원래 그래요
창문들은 늘 말이 없지요
매를 맞고 자란 전갈좌의 남자처럼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침묵이 유일한 무기란 걸 잘 알고 있는 거죠
쉿, 저 구석방의 문은 열지 마세요
거긴 온종일 지구를 도는 열차가 달리고 있고
수염이 허옇게 얼어붙은 채 끊임없이 주문을 외는 촛불이 살고 있어요
가까이 다가가면 크르렁, 시뻘건 이빨을 번뜩이며 울부짖죠
자폭하겠어!세상을 다 날려버리겠어!
여긴 저녁 햇볕이 가장 환해요
햇볕 속에 반짝이는 게 무엇인지
자기 눈을 찌르는 칼날들인지, 아무리 강풍이 불어도 끄떡없는 까치둥지인지 모르겠어요
언젠가는 저 속에서 알몸뚱이 천사가 떨어진 적도 있어요 가엾은 벌레 같았죠
어두워져도 불이 켜지지 않는 집이에요
재로 짠 옷을 입고 밤은 찾아오죠
우리는 모두 깨진 그릇 같은 존재들
누군가 간신히 본드로 붙여놓았죠
언제 부서져 흩어질지 몰라요
잠깐 앉으세요 조금만 쉬었다 가세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제 피는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으니
커피 맛은 괜찮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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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제3회 윤동주서시문학상」수상작품집(2018.1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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