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균

예(禮)

공산(空山) 2019. 7. 16. 13:59

   예(禮)      

   전동균

 

 

   한밤에 일어나 세수를 한다
   손톱을 깎고
   떨어진 머리카락을 화장지에 곱게 싸 불사른다
   엉킨 숨을 풀며
   씻은 발을 다시 씻고
   손바닥을 펼쳐
   손금들이 어디로 가고 있나, 살펴본다
   아직은 부름이 없구나
   더 기다려야겠구나, 고립을 신처럼 모시면서
   침묵도 아껴야겠구나
   흰 그릇을 머리맡에 올려둔다
   찌륵 찌르륵 물이 우는 소리 들리면
   문을 조금 열어두고 흩어진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불을 끄고 앉아
   나는 나를 망자처럼 바라본다

 

   초록이 오시는 동안은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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