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앝을 읽다
홍신선
지하 갱(坑)속 대오 잘 갖춘 병마용들처럼
창검을 비껴든 풀들이 뚫고 올라온다.
일진(一陣)이 무너지면 이진(二陣)이, 다시 삼진이……
계속 올라와 구몰한다.
내 호미 날 일합(一合)에
어깨 어슷 잘린 놈도
혹 실낱 같은 뿌리 하나 흙 틈에 붙어 있으면
그 자리서 외레 더 꼿꼿이 일어선다
함지박만한 하늘,
저를 점지한 하늘을 머리 위 떠메 이고,
외경하노니 이 지구의 낭심을 움켜잡고 한사코 놓지 않는
병마용들의
저 동물적 맹목의 생명력들을.
나는 오늘도 호미 끝으로
풀들의 대장경을 한 대문(大文) 한 대문 파헤치며 읽는다.
―《월간문학》201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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