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터앝을 읽다 - 홍신선

공산(空山) 2019. 3. 30. 16:07

   터앝을 읽다

   홍신선

 

 

   지하 갱()속 대오 잘 갖춘 병마용들처럼

   창검을 비껴든 풀들이 뚫고 올라온다.

 

   일진(一陣)이 무너지면 이진(二陣), 다시 삼진이……

   계속 올라와 구몰한다.

 

   내 호미 날 일합(一合)

   어깨 어슷 잘린 놈도

   혹 실낱 같은 뿌리 하나 흙 틈에 붙어 있으면

   그 자리서 외레 더 꼿꼿이 일어선다

   함지박만한 하늘,

   저를 점지한 하늘을 머리 위 떠메 이고,

 

   외경하노니 이 지구의 낭심을 움켜잡고 한사코 놓지 않는

   병마용들의

   저 동물적 맹목의 생명력들을.

 

   나는 오늘도 호미 끝으로

   풀들의 대장경을 한 대문(大文) 한 대문 파헤치며 읽는다.

 

 

   ―《월간문학201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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