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엔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았다. 가뭄이 계속 이어지다가 3월 초순에야 눈다운 눈이 한번 내렸었는데, 그땐 날씨가 푸근하여 금방 녹고 말았었다. 그런데 오늘 이 대구 지역에도 대설 예보가 있었고, 기온도 0도 전후로 낮겠다는 예보여서 눈이 많이 쌓일 것을 기대하여 나는 어제 미리 산가에 와 있었다.
새벽 세 시쯤 눈이 뜨여 창밖을 보니 눈이 제법 쌓여 있었고, 여섯 시에 일어났을 땐 온통 눈 세상이었다. 마당에 나가 철자를 꽂아 보았더니 적설량이 10cm가 넘었다. 눈이 조금 습해서 걸으면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났다. 손가락만 하게 새순이 자란 모란, 이제 막 삐죽 내미는 불두화 순, 꽃망울이 벙근 홍매와 활짝 핀 산수유 꽃 위에도 눈이 쌓였다. 지난주에 이미 마당의 한쪽에서 피어있던 할미꽃은 두꺼운 눈에 묻혀 위치조차 찾을 수 없다. 담 밑의 상사화는 눈 위에 푸른 새잎들을 내밀어 싱그럽다.
부모님 산소도 온통 눈 이불을 덮고 있었고, 그 앞의 진달래 꽃봉오리는 검붉은 빛깔이었는데, 얼지는 않았기를 바란다. 짱구와 함께 걷던 오솔길도, 짱구가 묻혀 있는 비탈도 온통 눈으로 덮였다. 소나무 가지가 부러지거나 휘어져서 길을 막은 곳도 있었다. 오늘이 때마침 춘분인데, 이렇게 많이 내린 눈이 새봄을 고이 맞이하는 서설(瑞雪)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눈은 종일 오락가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