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짱구가 돌아갔다

공산(空山) 2017. 11. 11. 20:11

짱구는 그 동안 먹는 밥의 양과 체중을 점점 줄이더니 그저께부터는 식음을 전폐했었다. 깨워서 밥그릇 앞에 일으켜 세우면 겨우 버티고 서서 냄새만 한번 맡고는 고개를 돌려버리고, 몸을 쭈그려 힘을 주며 오줌을 조금 누곤 제 집에 들어가 쓰러져 눕기 바빴다. 어제 밤엔 자다가 신음인 듯 잠꼬대인 듯 몇 번이나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오늘 새벽 5시쯤에 먼저 일어난 아내가 짱구가 이상하다고 해서 보니 의식이 희미한 듯하고 숨도 고르지 않았다. 두 손으로 받쳐 안는데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이름을 부르며 머리를 쓰다듬으면 눈꺼풀과 귀만 조금 움직일 뿐이었다. 아내와 내가 몇 번이나 목멘 소리로, 편안한 곳으로 잘 가거라, 다음 세상에서 우리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자고 작별 인사를 했는데, 알아듣는 듯 몇 번 신음 소리를 냈고 이따금 꼬리를 움직이기도 했다. 짱구의 눈에서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숨쉬기가 점점 느려지고 입을 벌리며 숨을 몰아 쉬곤 하더니, 눈을 반쯤 감은 채 몸이 싸늘해져 갔다. 아침 9시경이었다.

 

짱구는 한 살 반쯤 되던 2004년도에 우리 집으로 입양되었으니 열다섯 살쯤 된다. 입양되어 오기 전 어디서 다쳤는지 부러진 왼쪽 뒷다리가 굽은 채 치료되어 다리를 조금 저는 상태였지만, 큰 장애는 아니어서 그와 함께 식구들은 앞산이나 아파트 주위를 많이 산책했었다. 한번은 세 식구가 앞산에 갔을 때였는데, 오솔길을 내려오다가 잠깐 사이에 짱구가 길을 잃는 바람에 영영 헤어질 뻔한 적이 있었다. 친구 두 가족들까지 동원하여 어두워질 때까지 산속을 수색하는 소동 끝에 극적으로 상봉할 수 있었지만, 그건 우리가 저를 찾아내어서가 아니라 제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우리를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가시덤불을 얼마나 헤매었는지, 비를 맞고 발에 피가 맺혀 있던 짱구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잘못 치료된 왼쪽 다리의 휘어짐이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심해졌고, 몇 년 전부터는 오른쪽 눈에 백내장이 오더니 최근에는 왼쪽 눈동자마저 흐려지기 시작했지만, 노환이라 치료가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노년에 고생한 것 말고는 짱구는 건강한 편이었다. 식구들이 저를 두고 외출을 하면 가지 말라고 오른쪽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몇번이나 짖었고, 돌아오면 또 얼마나 반갑게 맞아 주던지 기력이 떨어진 최근까지도, 안아줄 때마다 손등을 가만히 핥아주며 답례하는 것을 잊지 않던 짱구다. 그리고, 제 집에서 따로 자는 것 보다는 아내가 덮고 자는 이불 자락에 누워 자는 것을 좋아했었다. 내가 트럼펫을 불러 강가로 나갈 때 가끔 함께 갈 때도 있었는데, 저도 목청을 뽑아 보기도 하며 내가 연습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 줄 줄도 알았다. 매사에 조심성이 많았고, 전용 변기를 사용할 줄도 알았지만, 밥으로 먹는 사료 외에는 어떤 간식이나 고기도 먹으려고 하지 않아 식구들을 늘 안타깝게 했다.

 

짱구 정과 애살이 많고 정직하며, 좋고 싫음을 가식없이 표현하고, 호기심이 많지만 제 밥 외에는 절대로 음식을 탐내지 않고, 볼일은 꼭 화장실에 가서 볼 줄 알고, 늦잠 자는 식구가 있으면 큰 소리로 불러 깨우고야 말며, 목욕하는 건 싫어하지만 목욕을 하고 나면 너무 기분좋아하며, 눈치가 빨라 누구라도 외출 준비를 하면 토라지지만, 돌아오면 온몸으로 반겨주며, 식구들과 산책하는 걸 좋아하고, 이 푸른 별에서 태어나 한 식구가 된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인연이라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는 .이것은 내가 2012629일에, 한 장의 짱구 사진과 함께 SNS에 남겼던 메모다.

 

그렇지만 짱구는 이제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편안한 곳으로 갔다. 한지(韓紙) 싸고 종이 상자에 담은 그 작고 가벼운 육신을, 생전에 그와 언약한 대로 부모님 산소 부근의 양지쪽 비탈에다 묻어 주었다. 지금 빈 자리가 너무 허전하지만, 그는 우리 마음 속에 언제까지나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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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11. 23.(인화지 사진 재촬영)
2005. 5. 25.(애견대회 참가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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