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시

안개 - 김참

공산(空山) 2017. 11. 28. 22:17

   안개
   김참

 

   공중엔 해가 떠 있었고 도로엔 구름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구름이 지나가자 사물들이 조금 사라졌다. 자동차 몇 대가 사라지고 강변 산책로에 늘어선 은행나무 몇 그루 사라졌다. 나무 의자에 앉아 강을 바라보던 연인이 그림자 두 개를 얼룩처럼 남기고 사라졌다. 강변 산책로에 구름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해 지고 어두워지자 강에서 안개가 올라왔다. 안개가 강변 은행나무들을 지워 가는 동안 강변 산책로에 기린들이 출몰했다. 오래전에 사라진 검은 개 몇 마리가 안개 자욱한 사차선 도로를 횡단하고 있었다. 아침이 와도 안개는 끝없이 피어올랐다. 오래전에 사라진 아이들이 검은 개와 함께 안개 속을 뛰어다녔다.

 


■ 이 시는 일단 기이하다. 세 문장, 즉 "공중엔 해가 떠 있었고 도로엔 구름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강변 산책로에 구름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해 지고 어두워지자 강에서 안개가 올라왔다"를 제외하곤 모두 현실에서는 있을 법하지 않을 일들을 적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시는 모호하다. 이 시에 등장하는 "구름 그림자"나 "강변 산책로" "은행나무" "연인" 그리고 "안개" "기린" "오래전에 사라진 검은 개 몇 마리"와 "아이들"이 그것 자체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은 어떤 다른 맥락 속으로 전이될 수 있을지 도통 헤아릴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는 다만 기이하고 모호할 뿐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첫 번째 문장은 정태적이다. 그리고 두 번째에서 네 번째 문장은 소멸의 이미지들로 가득하며, 다섯 번째 문장은 그러한 상태가 반복적임을 적고 있다. 이에 비해 그다음 문장들의 서술어들은 '올라오다' '출몰하다' '횡단하다' '피어오르다' '뛰어다니다'로 동태적이다. 심지어 '지워 가다'까지 말이다. 이를 놓고 보면 이 시는 '낮-구름 그림자-정태적-소멸'과 '밤-안개-동태적-생성'의 의미군으로 명확히 나뉘어 있다. 요컨대 이 시는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자꾸 나타나고 있다는 것인데, 그 무언가는 "오래전에 사라진" 것들이라는 것이다. 섬뜩하게 아름다운 시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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