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김완하
샌프란시스코 부근 라피엣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여덟 시간 달려온 곳, 지인의 별장이 있는 엘에이 부근의 피논힐로 가다가 잠시 기름 넣으러 휴게소에 들르고, 점심으로 햄버거 가게에 들러 쉬었다 닿은 곳
한 여름 사막 열기에 지치고 지쳐 흙먼지 길 따라 들어간 가파른 골목, 길 끝나는 지점에 내비게이션도 방향을 잃고 넉 다운 되고 만 곳, 막다른 비탈을 타고 오르자 거기 언덕 위에 외따론 건물, 사방 내려 쬐는 불볕더위에 심신은 시들고 방향 분갈 할 수 없어 차 밖으로 나오니 그곳은 온통 하늘, 바라볼 것은 오직 하늘뿐이었다
숨 막히는 더위 피해 집안으로 급히 들어가 창문을 여니, 사방에서 시원한 바람 몰려들어와 온몸 감싸고 더위에 지친 마음 어루만져 주었다 막막한 사막 한가운데 오직 바람만 살아 움직이고 세상 모든 바람은 그곳으로 몰려 왔다
집안에 갇혀 해가 지고 밤 되기 기다려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사위에 더위와 열기는 가시고 어두워가는 하늘 속으로 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둠 배경으로 펼쳐지는 찬란한 별의 세상, 머리 위로 북두칠성 또렷이 빛나고 있었다
밤 깊어 내게 귀한 손님 한 분 찾아왔다 한낮의 수많은 그늘도 어둠 속으로 눕고 사위에 불빛은 멀리 새 빛을 불러올 때, 문득 내 안에 잠자던 그가 깨어 일어났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렇게 그는 내게 왔다
―<시와표현>, 2016.10.
<시 읽기>
시의 본질에서 볼 때, 이 시는 불온하다. 첫째, 운문이어야 할 시가 산문으로 되어 있다. 둘째, 서사적 스토리가 골격을 이루고 있어 그렇다. 셋째, 시적인 이미지 창조에 무관심한 완결된 산문 문장으로 점철되어 있다.
통치 계급 또는 기성세력의 입장에서 보아 사상, 태도 등에 맞서고 대립하는 기질이 있음, 이것이 불온의 사전적 풀이이다. 먼 이국땅에서의 일기 또는 기행문 같은 내용과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텍스트는 시 장르에 대해 상당히 불온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단 한 가지 윤동주를 불러내는 방법이 특이한 미학을 수립하고 있다. 제2,3,4 연에서의 하늘, 바람, 별을 불러 서정적 자아의 고달픈 상황을 카타르시스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 이러한 사실을 직접 확인해 준다.
이국땅이라는 낯선 공간과 불볕 속 고행의 시간 위에 윤동주를 불러 세움으로써 ‘민족’의 의미를 헤아려 보는 밤의 ‘서시’를 재창조하는 아름다움을 만들고 있다.
병치은유, 환유, 분열적 심리묘사 등에 치어 있는 현재의 한국 시단에서 이 시는 또 다른 돌파구를 찾기 위한 하나의 용기 있는 실험으로 봐도 좋으리라. 이러한 실험의 작용과 반작용이 소용돌이를 일으킬 날이 과연 올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서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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