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가에서 걸어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부모님 산소. 아버지 봉분에는 잔디가 치밀하게 잘 덮였지만, 그 옆 엄마 봉분엔 왠지 잔디가 많이 죽어서 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가뭄이 지속될 때는 물을 떠다가 뿌리기도 하고, 혹시 뒤쪽 소나무의 솔잎이 북풍에 날려와 봉분에 얹히고, 그 솔잎의 왁스 성분이 녹아서 잔디에 해를 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난 가을에는 장대 끝에 톱을 매달아 산소쪽으로 뻗은 가지들을 다 잘랐다. 봉분에 덮였던 마른 솔잎도 모두 갈쿠리로 걷어내었었다. 그리고 오늘은 부근의 잔디를 떠서 봉분에 부분적 이식을 했다.
일을 하다가, 엄마 봉분 앞에서 이름 모를 앙증스런 풀꽃을 한 송이 발견했다. 2cm 정도의 키에, 하나 뿐인 활짝 핀 꽃송이는 엄지 손톱 보다 조금 더 큰 크기다. 구절초를 닮은 13장의 희고 환한 꽃잎과 노랗고 흰 여러 개의 꽃술, 담녹색의 잎에는 흰 솜털이 덮여 있는, 정말 예쁜 꽃이었다.
엄마가 이런 밥법으로 내게 말씀을 하시는 것인가. 엄마가 보내 주시는 선물인가. 몇 년 전 상석 앞에다 내가 심고, 해마다 초여름이면 꽃을 피우는 노란 원추리꽃 편지에 대한 엄마의 뒤늦은 답장인가. 하나 뿐인 이 아들을 얼마나 못 잊고 사랑하셨으면!
아직은 일러서 말라 있는 잔디 위에 엎드려, 나는 꽃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다가 내려왔다.
어머니의 답장
김상동
상석 앞에 심어 드린
원추리 꽃 편지에
늦은 답장 보내셨네
어머니 가신 지 여섯 해
소식 깜깜하더니
봉분 앞에 빛나는
낯설고 앙증스런 풀꽃 한 송이
생전에 한글 깨치지 못하시고
아들이 군대에 있을 적엔
이웃 손 빌려 답장하시더니
이제야
풀꽃 편지 법은 터득하셨나 보다
저 풀꽃처럼
환하게 지내시는가 보다
― 『텃밭시학』 6집,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