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란트(Rhénanie)
기욤 아폴리네르
라인 강의 밤
내 잔은 가득하다 불꽃처럼 떨리는 포도주로
사공의 느린 노랫소리를 들어라
달빛 아래 일곱 여자를 보았다 하네
발끝까지 닿는 푸른 머리칼 틀어 올리더라네
일어서라 원무를 추며 더욱 높이 노래하라
사공의 노래가 이제 그만 들리도록
그리고 내 곁에 데려와 다오 의연한 눈동자
머리타래 접어 올린 저 금발의 처녀들을 모두
라인 강 포도밭이 물에 비쳐 라인 강은 취했다
밤의 모든 황금은 쏟아져 떨며 강에 어린다
목소리는 숨 넘어갈 듯 여전히 노래한다
여름을 호리는 푸른 머리칼의 요정들을
내 잔은 부서졌다 쏟아지는 웃음처럼
종소리
미남 집시야 내 애인아
합창하는 종소리 들어 보려마
보는 사람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우리는 미친 듯이 사랑하였지
그러나 우리는 잘못 숨었다
사방으로 둘러선 모든 종들이
종루 꼭대기서 우릴 보아 두었다가
이제 온 사방에 고자질을 하는구나
내일이면 치프리엔과 하인리히도
마리아도 우르술라와 카테리나도
빵집여자와 그 남편도
그다음에 내 사촌 게르트루트도
내가 지나가면 히죽댈 거야
어디에 몸 둬야 할지 나는 모를 거야
너는 멀리 있겠지 나는 울겠지――
어쩌면 나는 그만 죽고 말 거야
아낙네들
포도밭 집에서 아낙네들 바느질을 한다
렌첸아 난로에 석탄을 더 넣고 커피 물을
올려놔라 ―― 고양이가 불을 쬐고 나서 기지개를 켜네
게르트루트가 옆집 마르틴이랑 결국 결혼을 한대
눈먼 밤꾀꼬리는 노래하려 애썼으나
올빼미가 울어 대자 새장에서 떨었다
저기 삼나무는 꼭 눈 맞고 길 떠나는 교황
같구나 ―― 우체부 양반이 가다 말고 서서
새로 온 학교 선생과 이야기를 하네
―― 올겨울은 아주 춥다 포도주가 아주 잘 익겠구나
―― 성당지기 그 귀멀고 다리 저는 영감이 오늘내일 한다는데
―― 늙은 촌장네 딸이 주임신부 성명축일에 쓸
별꽃을 수놓고 있더라 건너편 숲이 바람을 맞아
성당의 큰 오르간 같은 묵직한 소리로 노래 불렀다
꿈 트라움 양반이 누나 조르게 부인과 함께 찾아왔다
캐티야 양말 기워 놓은 게 엉망이구나
―― 커피랑 버터랑 타르틴을 가져와라
마멀레이드랑 돼지기름이랑 우유단지랑
―― 커피를 좀 따라 줄래 렌첸아
―― 바람이 라틴어 문장을 읊는 것 같아
―― 렌첸아 커피를 좀 따라 줄래
―― 로테야 너 슬퍼 보이는구나 오 가여운 것 ―― 사랑하나 봐요
―― 하느님 맙소사 ―― 난 나밖에 사랑하지 않아요
―― 쉬 지금 할머니께서 묵주신공을 바치고 계신다
―― 얼음 사탕이 있어야겠다 레니야 기침이 나와서
―― 피에르가 흰 족제비를 데리고 사냥을 나가는군
바람이 불어 전나무들이 모두 원무를 추고 있었다
로테야 사랑은 슬픈 거래 ―― 일제야 삶은 달콤한 거야
밤이 오고 있었다 포도밭은 그 뒤틀린 밑동들
어둠 속에 쌓인 해골 산이 되었다
눈으로 지어 접어 놓은 수의들이 거기 널려 있었고
개들은 얼어붙은 나그네들을 보고 짖어 댔다
그 양반이 죽었구나 들어 봐라 교회의 종이
느릿느릿 성당지기의 죽음을 알렸다
리제야 불길을 일으켜라 난롯불이 꺼져 간다
흐릿한 어둠 곡에서 아낙네들은 성호를 그었다
―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 민음사, 황현산 옮김,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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