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봄바람을 쐬다(짱구와 명자꽃)

공산(空山) 2016. 3. 22. 20:30

지난 일요일에 퇴직자 모임이 있다고 하도 전화가 와 쌓아서 팔공산을 나왔는데, 어제는 '월요시인학교'에 출석하는 날이었고, 내일은 또 고용 보험료를 받기 위해 고용센터에 마지막으로 출석해야 하는 날이고, 오는 토요일은, 낮에는 결혼식, 저녁엔 고향 친구들의 모임인 '구구회'가 시내에서 열리는 날이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엔 4월 총선과 관련된 어떤 애처로운 후보의 작은 후원회에 나가볼 생각이고, 그래서 나의 텃밭엔 다음 월요일 시인학교에 출석한 뒤에나 겨우 다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없어도 마늘 순과 정구지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을 것이지만, JBL 스피커는 빈집에서 심심하겠다.

 

이리하여, 오늘 오후엔 짱구와 함께 아파트 주위를 돌며 산책이나 하였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들이 낯설게 느껴지는지 짱구는 몇 걸음 걸을 때마다 멈춰 서서 두리번거리곤 했다. 이렇게 우리가 산책을 할 때면 늘 그랬듯이 오늘도 귀엽다며 짱구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았다. "너 몇 살이고 이름은 뭐야?", "부끄럼을 많이 타는구나!", "입이 짧은가 보네?" 꼭 내가 어릴 적에 엄마 손 잡고 가다가 듣던 말 같다.

 

봄바람이 푸근하고 상쾌했다. 개나리는 이미 활짝 피었고, 목련은 나무마다 활짝 핀 꽃송이가 절반이나 되었으며, 벚꽃도 꽃망울이 많이 부풀어 있었다. 명자꽃이 막 피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그 옛날 팔공산 계곡 양지쪽에서 드물게 만나던 꽃이다. 동백을 닮았지만 그 보다는 잎과 꽃이 훨씬 작으며, 무슨 짐승의 유두같이 생긴 꽃망울이 예쁘다. 지금은 이런 복잡한 도시로 팔려와서 매캐한 매연을 견디며 담장 노릇이나 주로 하고 있는 꽃. 예전에는 여자들 바람난다고 집 안에는 심지 않았다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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