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새 - 허만하

공산(空山) 2016. 2. 16. 17:28

   새

   허만하

 

 

   1

 

   형용사에 슬픈 연둣빛이 묻는 초여름이었지만 중후한 그의 사투리에는 바람에 흩날리는 북녘의 눈발이 자욱하였다 아득한 물마루에서 이랑져오는 어스름은 파도처럼 해안선을 씻고 있었다 플로리다 반도의 데이토나 비치 바람은 들길처럼 비탈지기도 하고 억새풀 들녘에서 쓰러지기도 한다 바람은 외롭다 바람은 사랑처럼 아프다 아프다(거리에 어둠의 안개가 깔리기 시작하던 서울까지 그는 평양에서 십팔 일을 걸었다고 했다)

 

 

   2

 

   사람에게 비상의 충동이 있기 때문에 하늘에 새가 있다는 것은 바슐라르의 언표다 우랄알타이의 누런 바람이 휘몰아치는 극동의 한반도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스스로 한 마리 새가 되어 무한 공간의 저편으로 잠적하는 비상을 나는 보았다

   눈부신 시인 朴南秀

   바람은 1994년 가을 길손의 손때 밴 지도를 떠나 투명한 하늘이 되었다 돌아오지 않는 길손 그렇다. 그의 시는 끝내 무릎을 꿇지 않았다.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솔출판사 1999.

 

   (이 시에서 마지막두 문장에만마침표가찍혀 있고 다른 곳에는 부호가 없는것은 오타가 아님. 북방족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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