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

바구니

공산(功山) 2015. 12. 29. 15:40

   바구니

   송찬호

 

 

   언제나 하늘은 빈 바구니로 내려왔다

   바구니가 비었으니 아직 살아 있나 보다

   여인은 다시 밥 바구니를 하늘로 올려 보냈다

   아, 뭉클한 밥 바구니가 한 입에 하늘로 꺼져 들어가곤 하였다

   옷을 넣어 보내면 금방 피고름 빨래가 되어 내려왔다

   여인의 몸도 점점 꺼져 들어갔다

   기약 없는 세월은 물같이 흘렀고 그 물가에서

   여인은 시름없이 빨래를 하였다

   물은 날마다 더럽혀져 갔다

   그 물이 흘러가는 어디선가 다시 근심 많은 여인들이

   더럽혀진 물로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빈 바구니 속에서 아이는 끊임없이 울었다

   여인은 바구니처럼 웅크리고 앉아 꼼짝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자라 여인을 버리고

   다시 이 지상을 떠날 때까지

   날마다 바구니 가득 그렇게 오르고 싶었던 하늘

   오, 저 밑 버림받은 세상에는

   몸 움푹움푹 팬 빈 바구니 같은 늙은 여인들만 남아 뒹굴고 있었다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민음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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