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

봄밤

공산(功山) 2015. 12. 29. 15:38

   봄밤

   송찬호

 

 

   낡은 봉고를 끌고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며 어물전을 펴는

   친구가 근 일 년 만에 밤늦게 찾아왔다

   해마다 봄이면 저 뒤란 감나무에 두견이 놈이 찾아와서

   몇 날 며칠을 밤새도록 피를 토하고 울다 가곤 하지

   그러면 가지마다 이렇게 애틋한 감잎이 돋아나는데

   이 감잎차가 바로 그 두견이 혓바닥을 뜯어 우려낸 차라네

   나같이 쓰라린 인간

   속을 다스리는 데 아주 그만이지

   친구도 고개를 끄덕였다

   옳아, 그 쓰린 삶을 다스려낸다는 거!

   눈썹이 하얘지도록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다 새벽 일찍

   그 친구는 상주장으로 훌쩍 떠나갔다

   문 가에 고등어 몇 마리 슬며시 내려놓고

 

 

   -- 2000년 제19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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