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신경림
살구꽃 지고 복사꽃 피던 날
미움과 노여움 속에서 헤어지면서
이제 우리 다시 만날 일 없으리라 다짐했었지
그러나 뜨거운 여름날 느닷없는 소낙비 피해
처마 아래로 뛰어드는 이들 모두 낯이 익다
이마에 패인 깊은 주름 손에 밴 기름때 한결같고
묻지 말자 그동안 무얼 했느냐 묻지 말자
손 놓고 비 멎은 거리로 흩어지는 우리들
후줄근히 젖은 어깨에 햇살이 눈부시리
언제고 다시 만날 걸 이제사 믿는 우리들
메마른 허리에 봄바람이 싱그러우리
―『쓰러진 자의 꿈』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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