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검은 바지의 밤 - 황병승

공산(功山) 2026. 2. 22. 23:11

   검은 바지의 밤 

   황병승(1970~2019)

 


   호주머니를 잃어서 오늘밤은 모두 슬프다
   광장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모두 서른 두 개
   나는 나의 아름다운 두 귀를 어디에 두었나
   유리병 속에 갇힌 말벌의 리듬으로 입맞추던 시간들을.
   오른 손이 왼쪽 겨드랑이를 긁는다 애정도 없이
   계단 속에 갇힌 시체는 모두 서른 두 구
   나는 나의 뾰족한 두 눈을 어디에 두었나
   호수를 들어올리던 뿔의 날들이여.
   새엄마가 죽어서 오늘밤은 모두 슬프다
   밤의 늙은 여왕은 부드러움을 잃고
   호위하던 별들의 목이 떨어진다
   검은 바지의 밤이다
   폭언이 광장의 나무들을 흔들고
   퉤퉤퉤 분수가 검붉은 피를 뱉어내는데
   나는 나의 질긴 자궁을 어디에 두었나
   광장의 시체들을 깨우며
   새엄마를 낳던 시끄러운 밤이여.
   꼭 맞는 호주머니를 잃어서
   오늘밤은 모두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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