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지
서대선
눈 내린 새벽
남의 집 살러 가는
열두 살 계집아이
등 뒤로
눈 속에 묻히는
작은 발자국
멀리서 대문 닫아거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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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지는 오이나 가지 등에 맨 처음으로 열리는 열매를 이르는 말입니다. 요즘은 상상할 수도 없지만, 예전 가난하던 시절에는 입 하나 덜기 위해서 식모살이를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제목인 “꽃다지”에 암시되어 있듯이 주로 맏딸이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시인은 구구절절 긴 설명을 하는 대신 행간의 여백을 사용해 “눈 내린 새벽” 길로 상징되는 차갑고 어두운 세상으로 나가는 “열두 살” 어린 소녀와 “대문 닫아거는 소리”로 상징되는 부모와의 단절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형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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