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라기 노리코

오우메 가도

공산(功山) 2025. 1. 12. 12:23

   오우메 가도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 1926~2006)

 

 

   나이토 신주쿠에서 오우메까지

   곧장 연결될 터인 오우메 가도*

   말똥 대신 배기 가스

   끊임없이 줄지어 서서

   시각을 다투며 핏발 선 눈으로 핸들을 잡은 이들은

   오늘 아침 벌떡 일어나 세수했을까?

   꾸물꾸물 반창고를 떼어내듯 침대와 떨어졌다

          구루미 복사지

          동양합판

          사케 기타노호마레

          마루이 크레디트

          아케보노 빵

   가도 한 군데에 버스를 기다리느라 서 있으니

   무수한 중소기업 이름

   갑자기 신선하게 눈앞을 스쳐지나가고

   필사의 가문家紋

   과연 몇 년 뒤까지

   보존될까 의심하면서

   음력 5월 초하루 고이노보리**

   천연덕스럽게 바람을 삼키고

   느티나무 새싹은, 우듬지에 돋고

   청량한 말차, 하늘에서 마시는 것은 누구인가

   일찍이 막부 말기에 살았던 자, 누구 하나 현존하지 않는다

   지금 막 태어나 첫 울음을 우는 이도

   80년 뒤에는 썰물처럼 사라질 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지금을 살아 맥박이 뛰는 이

   불현듯 사랑스러워 읽는다, 소리내어

          뎃포 스시

          가키누마 상사

          알로베이비

          사사키 유리

          우다가와 목재

          잇세이샤 세탁

          파머시 그룹 정기편

          쓰키시마하츠조 용수철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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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우메 가도(靑梅街道)는 에도시대에 성을 축조할 때 무사시오우메의 석회암을 운반하기 위해 개설된 것으로, 도쿄 도의 신주쿠에서 다마 강 유역을 지나 고후 분지에 이른다.

   ** 고이노보리(ぼり)는 종이 또는 천으로 잉어 모양을 만들어 단오 명절에 올리는 장대로, 바람이 잉어 머리쪽부터 들어가 펄럭인다. 남자아이의 성장과 출세를 상징한다.

 

 

  ―『이바라기 노리코 선집』 다니카와 슌타로 엮음, 조영렬 옮김, AK,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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