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부에 다녀올게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 1926~2006)
한국의 노인 중에는
지금도
화장실에 갈 때
유유히 일어나
"총독부에 다녀올게"
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던가
조선총독부에서 소환장이 오면
가지 않고는 못 버티던 시대
불가피한 사정
이를 배설과 연결 지은 해학과 신랄함
서울에서 버스를 탔을 때
시골에서 온 듯 보이는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두루마기를 입고
검은 갓을 쓴
소년이 그대로 자라 할아버지가 된 듯
순수 그 자체의 인상이었다
일본인 여럿이 일본어로 몇 마디 나누었을 때
노인의 얼굴에 공포와 혐오
스치는 것을 보았다
어떤 말보다도 강렬하게
일본이 한 짓을
그때 보았다
―『처음 가는 마을』 2019. 정수윤 옮김, 봄날의책
'이바라기 노리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샘 - 이바라기 노리코 (0) | 2025.01.11 |
---|---|
짐승이었던 (0) | 2025.01.11 |
이웃나라 언어의 숲 - 이바라기 노리코 (0) | 2025.01.11 |
그 사람이 사는 나라 (0) | 2025.01.10 |
말하고 싶지 않은 말 - 이바라기 노리코 (0) | 2022.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