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라기 노리코

총독부에 다녀올게

공산(功山) 2025. 1. 11. 13:45

   총독부에 다녀올게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 1926~2006)

 

 

   한국의 노인 중에는

   지금도

   화장실에 갈 때

   유유히 일어나

   "총독부에 다녀올게"

   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던가

   조선총독부에서 소환장이 오면

   가지 않고는 못 버티던 시대

   불가피한 사정

   이를 배설과 연결 지은 해학과 신랄함

 

   서울에서 버스를 탔을 때

   시골에서 온 듯 보이는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두루마기를 입고

   검은 갓을 쓴

   소년이 그대로 자라 할아버지가 된 듯

   순수 그 자체의 인상이었다

   일본인 여럿이 일본어로 몇 마디 나누었을 때

   노인의 얼굴에 공포와 혐오

   스치는 것을 보았다

   어떤 말보다도 강렬하게

   일본이 한 짓을

   그때 보았다

 

 

   ―『처음 가는 마을』 2019. 정수윤 옮김, 봄날의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