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 방
한 강
봄부터 북향 방에서 살았다
처음엔 외출할 때마다 놀랐다
이렇게 밝은 날이었구나
겨울까지 익혀왔다
이 방에서 지내는 법을
북향 창 블라인드를 오히려 내리고
책상 위 스탠드만 켠다
차츰 동공이 열리면 눈이 부시다
약간의 광선에도
눈이 내렸는지 알지 못한다
햇빛이 돌아왔는지 끝내
잿빛인 채 저물었는지
어둠에 단어들이 녹지 않게
조금씩 사전을 읽는다
투명한 잉크로 일기를 쓰면 책상에 스며들지 않는다
날씨는 기록하지 않는다
밝은 방에서 사는 일은 어땠던가
기억나지 않고
돌아갈 마음도 없다
북향의 사람이 되었으니까
빛이 변하지 않는
----------------------------------
소설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흥분한 채 며칠을 보냈다. 어디 나뿐일까. 서점마다 작가의 대표작 재고가 있는지 문의가 쇄도하고 한 대형 서점엔 그의 책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온·오프라인 지면들은 작가에 대한 갖은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그야말로 놀라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간 출판이나 행사 등을 통해 접해본 소설가 한강은 고요한 사람이다. ‘주변에 진공 상태가 있어 불필요한 잡음 따위는 가만히 지워지는 것은 아니려나’ 생각했을 만큼. 그의 작품들은 꼭 그를 닮았다. 가만한 가운데 아슬한 감각과 애틋한 정서를 드러낸다. 나는 이 즐거운 소란이, 작가가 안팎으로 유지해온, 어쩌면 지켜온 고요를 흐트러뜨릴까 봐서 걱정이다. ‘사용 인구가 채 1억이 되지 않는 한국어로 집필 활동을 해온 소설가가 수상한 노벨 문학상’이라는 사실의 의미를 축소하자는 건 아니다.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격정을 감추자는 것도 아니고 다만, 지금의 기쁨을 미래의 방향으로 가져가자는 것이다. 작가는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평균 연령에 못 미칠 만큼 젊다. 그가 앞으로 보여줄 다음의 책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사생활에 대한 관심이나, 이후 행보에 대한 과한 기대는 작가가 간직한 시심을 해치고 방해할 수 있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물론 소설가 한강은 용기 있고 강한 사람이다. 그의 소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수많은 어려움 중에도 흔들림 없이 작은 마음들에 귀를 기울이고 소외된 존재들의 편에 기꺼이 서는 작품을 써왔다. 한국의 문학 독자들은 그런 한강과 한강의 작품들을 사랑해왔다. 같은 이유로 그는 한국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그가 북향 방에서 집필할 고요하고 단단한 다음 작품을 가만히 기다린다.
유희경 (시인)
'해설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옥관 「노래의 눈썹」 해설 - 김상환 (0) | 2024.10.31 |
---|---|
한강의 「저녁 잎사귀」 감상 - 이설야 (0) | 2024.10.15 |
론 파젯의 「한 소절」 감상 - 송재학 (0) | 2024.10.07 |
허수경의 「공터의 사랑」 감상 - 박준 (1) | 2024.09.10 |
정우신의 「메카닉」 감상 - 박소란 (1) | 2024.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