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물원을 위하여•10
—기호지세
엄원태
개원 이래 처음이었다
한 관광객이 사파리 버스 뒷자리에서 졸다가
차가 급히 출발하는 바람에
나동그라지며 낙상당한다
떨어진 곳이 마침 잠든 왕 호랑이 등 쪽이어서
자다가 너무 놀란 범이 냅다 전속력으로
달리며 마구 포효하는 바람에
위태위태 등에 올라앉은 그이는 졸지에
범국가적인 관심의 주인공이 되었다
얼마나 잘 달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잘 뛰어내려야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었지만,
달리는 거대한 범에 올라탄 그 모습이
언뜻 호걸의 풍모를 풍기기도 해서였던지
그는 단박에 국민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그의 적나라한 표정과 몸짓이
노인들의 기호와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이었을까
사건은 그리하여 훗날
‘기호지세騎虎之勢’라 불리게 될
새 고사성어의 탄생 설화가 되어갔다
—《시와 반시》 202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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