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이 동물원을 위하여•10 - 엄원태

공산(空山) 2023. 4. 26. 21:50

   이 동물원을 위하여•10

   —기호지세

   엄원태

 

 

   개원 이래 처음이었다

 

   한 관광객이 사파리 버스 뒷자리에서 졸다가

   차가 급히 출발하는 바람에

   나동그라지며 낙상당한다

 

   떨어진 곳이 마침 잠든 왕 호랑이 등 쪽이어서

 

   자다가 너무 놀란 범이 냅다 전속력으로

   달리며 마구 포효하는 바람에

   위태위태 등에 올라앉은 그이는 졸지에

   범국가적인 관심의 주인공이 되었다

 

   얼마나 잘 달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잘 뛰어내려야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었지만,

 

   달리는 거대한 범에 올라탄 그 모습이

   언뜻 호걸의 풍모를 풍기기도 해서였던지

 

   그는 단박에 국민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그의 적나라한 표정과 몸짓이

   노인들의 기호와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이었을까

 

   사건은 그리하여 훗날

   ‘기호지세騎虎之勢’라 불리게 될

   새 고사성어의 탄생 설화가 되어갔다

 

 

   —《시와 반시》 2022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