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이 동물원을 위하여•서 - 엄원태

공산(空山) 2023. 4. 27. 13:33

   이 동물원을 위하여•서
   엄원태(1955~ )
 
 
   누가 만든 동물원인지 동물원 하나가 거대한 공중 구조물처럼 도시를 뒤덮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나무와 풀, 꽃들이 쫓겨난 자리에 짐승들이 발호하여, 붉은 아가리로 포효하거나 날카로운 발톱으로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으며 광범위한 백색소음 지대를 만들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짐승이 되는 풍조라, 자신이 어느 훌륭한 조련사에게 길든 줄도 모른다.) 주인이 불분명한 이 동물원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상의 집들과 방 안까지 짐승의 누린내를 피운다. 사람들이 모두 짐승이 되어가는 까닭이다. 짐승들 중의 어떤 놈은 자기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초식성에서 잡식성을 거쳐 육식성으로 진화해가기 바쁜 나날이다. 결사의 자유를 부여받아 (누구로부터인지는 불분명하다.) 거리로 나서고, 부대를 이루기도 한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모두 동물들인가? 이 세상은 동물을 위한 하나의 동물원인가?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짐승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기꺼이 짐승이 되어가는 풍조라 이런 구분이 불분명하다.) 그러면 밤낮이여, 다시 끝없이. 이 동물원을 위하여!
 
 

   *이경록,「이植物園을 위하여•序」(흐름사, 1979)를 오마주하여 변용한 것임.

 
 
   —계간《문학동네》2022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