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시

최서림의 「정저지와井底之蛙」 감상 - 서대선

공산(空山) 2022. 9. 5. 09:09

   정저지와(井底之蛙)

   최서림

 

 

   하늘을 날아다니며 노니는 신인神人보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살고 싶다.

   열심히 돈 벌어 마누라한테 갖다 바치고

   다 큰 자식들 눈치나 보고 살고 싶다.

   무한경쟁 속에서 로또나 꿈꾸며 살고 싶다.

   바람보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진인眞人보다

   땅바닥을 박박 기면서 살고 싶다.

   솔잎에 이슬을 받아먹고 사는 지인至人보다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는 샐러리맨으로 살고 싶다.

   변기 뚫는 관통기 사러 철물점 찾아다니다가

   빈 깡통 걷어차며 화풀이나 하며 살고 싶다.

   팔목 부러진 아내 대신에 설거지나 하며 살고 싶다.

   아내랑 옥신각신하는 가운데 어느덧,

   우물 안에도 별빛이 비친다. 나에게도 드디어

   작은 평화와 가벼운 자유가 빗물처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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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5시 현관문을 연다. 현관 앞에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하늘을 맞는다. 오늘 이 새벽,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하늘은 어제의 하늘이 아니라 내 생애에서 지금(now)’ 만나는 처음의 하늘이기에 눈을 크게 뜨고 우주를 담아 본다. 마당으로 내려가 두 발로 땅을 천천히 밟는다. 매일 밟고 다니는 마당이지만 오늘 여기(here)’서 처음 밟아보는 땅처럼 발바닥으로 땅의 감촉을 느끼며, 내 발과 내 마음이 딛고 다닐 곳을 둘러본다. 그리고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만들어갈 평범한 삶 속에 작은 평화가 충만하길 소원한다.

   아침마다 현관문을 열면서, 소소한 하루의 일상을 시작할 수 있는 감사의 마음을 담은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는 것은 현관까지 나가지 못했던 시간을 겪고 나서다. 작년 봄, 자전거를 타다 굴러서 오른쪽 발가락이 부러졌다. 석 달을 휠체어 신세를 지면서, 현관문 바로 밖까지의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깁스한 발의 뼈가 붙는 동안, 시간은 우물처럼 깊게 고여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서 소소한 일상의 생활과 멀리 떨어진 채 힘든 시간을 견딜 수밖에 없었던 그때, “하늘을 날아다니며 노니는 신인神人보다”, “바람보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진인眞人보다”, “솔잎에 이슬을 받아먹고 사는 지인至人보다이 지구라는 우물 안 개구리로 살고 싶다던 천사 다미엘의 소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베를린 천사의 시(Der Himmel űber Berlin)에는 여러 천사들이 나오지만, 그중 천사 다미엘은 인간이 되고 싶어 했다. 천사 다미엘이 원하던 것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마셔보고 싶은 것,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는 바람을 느끼고 싶은 것, 땅바닥에 굴러 떨어져 온몸에 흙이 묻는 중력을 느끼고 싶은 것, 맨발로 땅 위를 걸으며, 발바닥의 감촉도 느끼고, 걸을 때마다 발가락뼈와 무릎관절과 고관절이 같이 움직이는 것도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다. 천사 다미엘이 영원(forever)'히 살 수 있던 천사의 길을 포기하는 대신, ‘지금(now)’ ‘여기(here)'를 살고 싶어 하면서 원하던 소원들은 우리가 매일 겪는 소소하지만 고마운 줄도 모르던 일상이었다. 발이 부러진 내가 휠체어에 앉아 간절히 원했던 것도 바로 천사 다미엘이 원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예전에 누리던 일상의 모습들이 많이 사라졌거나 변질되었다. 먼 거리 이동이 제한되었고, 가족과 친구들과 이웃도 예전처럼 자유롭게 만날 수 없는 코로나 시대에 정저지와井底之蛙의 삶도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소원일 수 있다.

 

   서대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