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대식

꽃의 북쪽

공산(空山) 2022. 9. 4. 19:12

   꽃의 북쪽

   우대식

 

 

   개구리도 겨울잠에 들고

   싸락눈이 내리는 밤

   마쓰오 바쇼,

   이런 날은 늘 바람이 창호 문을 두드렸지

    화로에 술을 데우도록 하지

   낡은 신발은 방 안 머리맡에 놓아두도록 하지

   왜 마음이란

   천리만리 달아나는 것인지

   조금은 뜨거운 술을 천천히 내장에 붓고

   매화나 동백 같은 꽃을 기다리기로 하지

   아니면

   꽃의 북쪽으로 달아날까

   신음처럼 그대가 내게 물을 때

   절망의 심줄을 활시위처럼 당겨

   심장 가장 먼 뒤쪽으로 모든 생각을 모으곤 하지

   마쓰오 바쇼,

   조금 추워도 되겠지

   유여한 봄빛이 마루 구석 쌀통에 넘칠 즈음이면

   안개와 연기는 강줄기를 따라 무진무진 흐르겠지

   그대와 나도

   이쯤에서 안녕이지

   연기를 좋아하는 나와 안개를 좋아하는 당신

   바람이 올 때까지만 지상에 기대기로 하지

   이쯤에서 안녕이지

 

 

   -- 『베두인의 물방울』 여우난골,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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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대식 / 1965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단검』 『설산 국경』 『베두인의 물방울』. 저서 『죽은 시인들의 사회』 『비극에 몸을 데인 시인들』 『선생님과 함께 읽는 백석』 등. <현대시학작품상> 수상. 현재 숭실대 문예창작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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