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를 위한 변명--시론
우대식
마리아
당신은 내 유일한 저쪽이다
모래바람이 당신의 한쪽 얼굴을 쓸고 갈 때
태양은 당신의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맑고 찬 우물에 충충히 번지는 양의 핏물처럼
광야의 밤이 찾아온다
짐승의 울음소리가 떠도는 밤이다
태초에 있었던 당신
마리아라고 부를 때마다 쌓여가는 그리움의 두께를 느낀다
가까스로 살아
당신을 배경으로 오래전 인화된 사진처럼 낡아간다는 사실은
어떤 위로와도 견줄 수 없다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있다는 사실도 적어둔다
마리아
서리 내리는 가을 새벽처럼
우리가 좀 더 추운 곳에서 종말을 맞이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물을 긷는 사내가 되어 어떤 골목길에서 당신을 만나는 꿈을 꾼다
조심스레 길을 비킨다
찰랑대는 물통에서 몇 방울의 맑은 물이 당신의 옷자락으로 떨어진다
내가 당신과 동행하는 서툰 방식이다
당신과 내가 눈 내리는 사막을 걸어 어느 베두인의 집에 이르면
호롱불 아래 수많은 문자들이 울고 있을 것이다
거기서 십 리 즈음이면 나의 노래도 멎을 것이다
마리아,
-- 『베두인의 물방울』 여우난골,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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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대식 / 1965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단검』 『설산 국경』 『베두인의 물방울』. 저서 『죽은 시인들의 사회』 『비극에 몸을 데인 시인들』 『선생님과 함께 읽는 백석』 등. <현대시학작품상> 수상. 현재 숭실대 문예창작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