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개 옮겨 적기
강주
흰 개를 사랑하는 한 사람을 알고부터 매일 꿈을 꾸었네. 흰 개가 흰 개를 물고 돌아오네. 꿈속에서 흰 개는 한 마리였다가 떼를 이루었네. 오직 흰 개로만 이루어진 세계 속에 나는 있고 나는 보이지 않았네. 흰 개를 뭉쳐 던지는 손이 있고 흰 개가 핥는 손이 있었네. 흰 개는 소복소복 쌓이기도 했네. 흰 개를 부르는 방법은 말할 수 없네. 말이 아니라 몸이었으므로. 통제 불능의 흰 개도 있었고 그들로 둘러싸인 꿈에서 깨고 싶었네. 나를 구원할 유일한 방법은 꿈을 깨뜨리는 것. 이 견고한 꿈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네. 그럴수록 흰 개들은 더 많아지고 사나워졌네. 흰 개가 잔잔해질 때까지 숨을 죽이며 흰 개처럼 있었네. 흰 개는 나를 휘감고 소용돌이쳤네. 재촉하는 흰 개를 연구개음으로 화답했네. 가속구간이었으므로 달렸네. 숨이 찰 때까지 달려 흰 개에 닿았네. 들었네. 너의 삶은 장점이자 단점이라는 속삭임을. 흰 개는 울부짖었네. 끊임없이 재생되는 흰 개. 흰 개는 울려 퍼졌네. 흰 개를 쓰다듬네. 흰 개는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종이. 흰 개를 흰 개로 옮겨 적네. 흰 개로 나를 지우네. 흰 개, 흰
개.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마 - 김륭 (0) | 2022.08.20 |
---|---|
던니스(doneness) - 김륭 (0) | 2022.08.20 |
종친회 - 권박 (0) | 2022.08.20 |
흰 웃음소리 - 이상국 (0) | 2022.08.15 |
낮잠 - 김이강 (0) | 2022.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