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

‘배밀이’하는 삶 속의 잠재적 힘 - 김사인『어린 당나귀 곁에서』- 이성혁

공산(空山) 2015. 12. 11. 12:11

배밀이하는 삶 속의 잠재적 힘

                   ― 김사인, 어린 당나귀 곁에서(창비, 2015)

이성혁(문학평론가)

 

김사인의 어린 당나귀 곁에서2006년 그의 두 번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이 출간된 이후 9년 만에 나온 시집이다.(두 번째 시집이 첫 번째 시집 밤에 쓰는 편지가 출간된 이후 근 20년 만에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예전보다는 빨리 나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이 시집에는 다양한 경향과 스타일의 시가 실려 있는데, 하지만 주조는 다소 전통적인 회감의 서정에 있다고 본다. 쓸쓸함을 불러일으키는 회감이 이 시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를 낳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김사인의 회감은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미지를 표출하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절절한 실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 그 특유한 면이 있다. 가령 목포를 보면, 그의 회감은 옛날 애인은 잘 있는가/늙어가며 문득 생각키는 것에 이끌리면서 시린 하늘과 겨울 바다 저쪽/우이도 후박나무숲까지” “이제는 허리가 굵어져 한결 든든할 잠의 복판을/저 통통배를 타고 꼭 한번은 가닿아야 하리라라는 희구를 동반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때 허리가 굵어져 한결 든든할 잠의 한복판이라는 적실하고 절묘한 이미지는 회감의 서정을 풍성하고 깊게 하는데, 이러한 빛나는 이미지들을 다수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 시집을 읽는 즐거움이다.

 

인상적인 이미지를 또 하나 소개하자면, 이 시집의 발문을 쓴 최원식이 말한 바 우리말 의성의태어의 육체성을 증폭시켜 읽는 이의 마음속 금선(琴線)조차움킨다는, “동백도 벚꽃도 이젠 지엽고/몸 안쪽 어디선가 찌릉찌릉/여치가 하나 자꾸만 우는 저녁바다입니다”(통영)와 같은 구절에 나타나는 이미지들 들고 싶다. 말의 육질을 최고도로 되살린 이러한 이미지들은, “속없는 건달로 산 통영의 시적 화자의 바람 같은 삶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진한 맛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살은 이렇게 달고/소주도 이렇게 다디단/저무는 바다”(소주는 달다)라는 구절을 빌리면, 이제 저물어가는 삶에서 우러나오는 쓸쓸함과 서글픔의 그 육질성이 독자를 더욱 달고진한 서정에 잠기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저물어가는 삶에서는, “아파서 죽는 건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는 아내 말마따나 너무 많이 앓지는 말고, 그만할 때쯤 내릴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고요한 길)을 하게 되리라. 시인 내면에서 일으켜진 회감마저도 그는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 “눈멀고 귀먹은 시간이 곧 오리니 겨울 숲처럼 더는 아무것도 애닯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리니//잘 가렴 눈물겨운 날들아.”(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시인의 절절한 작별인사는 그가 모든 것을 잃어버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하여, 그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고 있는데, 이 시는 김소월 류서정시의 극점에 다다른 느낌이다.

 

나 죽거든 애인아

바닷가 언덕에 초분 해다오.

바닥엔 삼나무 촘촘히 놓고

솔가지와 긴 풀잎으로 덮어다오.

 

저무는 바다에

저녁마다 나 넋을 놓겠네.

살은 조금씩 안개 따라 흩어지고

먼 곳의 그대 점점 아득해지리.

그대도 팔에 볼에 검버섯 깊어지고

시든 꽈리같이 가슴은 주저앉으리.

 

대관절 나는 무엇으로 여기 있나,

곰곰 생각도 다 부질없고

밤하늘 시린 별빛에도 마음 더는 설레지 않을 때

어린 노루 고라니들 지나다가 캥캥 울겠지.

오요요 불러 남은 손가락이라도 하나 내주며 같이 놀고 싶겠지.

버리고 온 자동차도 바람에 바래다가 언젠가 끌려가겠지.

 

비라도 오는 밤은 내 남은 혼

초분 위에 올라앉아 원숭이처럼

긴 꼬리 서러워 한번쯤 울어도 보리.

 

 초분(草墳)전문

 

김소월의 초혼에서는 시적 화자인 산 자가 허공에 대고 죽은 자를 헛되이 부르고 있다면, 위의 시의 시적 화자는 죽은 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죽음에의 욕망은 완전한 소멸에의 욕망이 아니어서, 그는 몸과 영혼이 바람에 흩날릴 풍장이나 땅에 갇혀 썩어갈 매장을 원하지 않고 점점 아득해질 먼 속의 그대를 바라보며 넋과 살이 조금씩 안개 따라 흩어질 수 있는 초분을 원한다. 그래서 위의 시는 황동규의 풍장연작처럼 죽음과 허무에 대응하고자 하는 남성적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위의 시의 시적 화자는 실연의 슬픔에 못 이겨 죽음을 원하지만, 그러나 그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서러움의 감정 역시 놓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김사인 시에서 죽음의 서정은 형이상학적이라기보다는 실연과 연결된 구체적인 감정을 잃지 않는다. 그 구체성은 실연한 자가 떨어지게 될 비루한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육감적인 이미지들을 움켜쥐고 있는 아래의 시에서도 잘 볼 수 있다.

 

문 앞에서 그대를 부르네.

떨리는 목소리로 그대 이름 부르네.

나 혼자의 귀에는 너무 큰 소리

대답은 없지 물론.

닫힌 문을 걷어차네.

대답 없자 비로소 큰 소리로 욕하네

개년이라고.

 

빈집일 때만 나는 마음껏 오지.

차가운 문에 기대앉아 느끼지.

계단을 오르는 그대 발소리

열쇠를 찾는 그대 손가락

손잡이를 비트는 손등의 흉터

문 안으로 빨려드는 그대의 몸, 순간 잠시 부푸는 별꽃무늬 플레어스커트

부드러운 종아리

닫힌 문틈으로 희미한 소리들 새어나오지.

 

남아 떠도는 냄새를 긴 혀로 핥네.

그대 디딘 계단을 어루만지네.

그대 뒷굽에 눌린 듯 손끝이 아프지만

견딜 수 있지 이 몸무게 그리고 둥근 엉덩이

내손은 떨리네 빈집 앞에서.

 

빈집전문

 

실연당한 남자는 빈집일 때만” ‘마음껏그녀의 집에 올 수 있는 법, 그는 대답이 없을 것을 알면서도 나 혼자의 귀에는 너무 큰 소리로 불러보고는, 대답이 없자 개년이라고비루하게 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고작 차가운 문에 기대앉아그대의 발소리와 손가락을 상상하며 그대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대를 만날 수 없으므로, 그는 그대의 흔적이 묻어 있는 사물들을 만지고 상상할 수 있을 뿐인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그는 문 안으로 빨려드는 그대의 몸, 순간 잠시 부푸는 별꽃무늬 플레어스커트/부드러운 종아리를 에로틱하게 상상한다. 물론 저 종아리의 감촉을 다시 실제로는 느낄 수 없는 일, 그 상상은 허망할 뿐이다. 허나 실연당한 자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아직 남아 떠도는 냄새가 있어서 그 붙잡을 수 없는 냄새를 긴 혀로 핥고자 한다. 하여, 그대를 만지고 느끼고 싶어 하는 그의 욕정의 처절함은, 나아가 계단을 어루만지면서구두 뒷굽에 눌릴 때의 통각(痛覺)을 느끼는 데에까지 이른다. 그 통각으로 그는 그대의 몸무게와 둥근 엉덩이까지 감지하면서 손을 떨고 있다. 이렇게 실연당한 남자는 미친 사람처럼 문에 기대 앉아 계단을 어루만지고 허공을 혀로 핥는 행위를 그치지 못할 것임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위의 시에서와 같이, 어떤 초월의 포즈도 보여주지 않고 아프고 쓸쓸한 마음을 처절하리만치 구체화하여 솔직하게 표명하는 것이 이 시집의 특성이자 미학이다. 그런데 초탈로 나아갈 수 없는 김사인 시인의 시적 성향은, 그의 시가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한다. 사라지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그의 마음은 쉽게 떠나지 못한다. 가령, 미루나무 길은 한 마을 속의 사라진 장소들에 대한 기억 속의 사물들과 길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면서 그 마을을 재구성한다. “바닥 초본식물처럼 엎드려 살다간 김태정이나, “모두 잠든 어느 시간 짚검불처럼 바람에 불려 세상 바깥으로 가고 싶어 했던 박영근, 한이 쌓이고 증오가 엉겨 밥도 잊고 잠도 잊꺼먼 칼이된 김남주 시인을 기억하는 것도 역시 아름다웠던 삶들을 현재화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의 기억은 아름다움과 관련되어 있지만은 않다. 몸에 새겨진 폭력 역시 그를 떠나지 않는 기억이다. ‘삼십년이 지나도록, 고문이 자행되던 취조실에서 시월 한달 뭘 했는지 하나도 빼지 말고 전부 쓰라고”(일기장 악몽) 강요당했던 기억은 여전히 그의 꿈으로 재현되곤 하는 것이다. 기억에 새겨진 폭력은 무의식 차원으로까지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시인이 구사하는 은유에로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공안부 검사 같은 자정이 오네./최후진술 같은 안개 깔리고”(불길한 저녁)와 같이 말이다. 그런데 이렇듯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국가폭력에 대한 기억은 또 다른 시에서 전개되는 현 사회에 대한 비판의 동력이 되어주고 있는 것 같다. 국정원의 은밀한 존재에 대해 비아냥대는 내곡동 블루스같은 시에는 그러한 공포와 치욕의 기억들이 밑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돈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천박한 자본 논리에 점령당한 한국의 현 상황에 대해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지전 석장같은 시편들은 현 사회에 대한 시인의 분노와 경멸을 거침없이 내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멸은, 그 사회의 수레바퀴에 끼어 살아가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과 겹쳐 있다는 특성이 있다. 이것이 김사인 시의 솔직성이자 진정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김사인의 사회시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시가 한국사라는 시라고 생각한다.

 

얼빠진 집구석에 태어나

허벅지 살만 불리다가 속절없이 저무는구나.

내 새끼들도 십중팔구

행랑채나 지키다가 장작이나 패주다가 풍악이나 잡아주다가 행하 몇푼에 해해거리다 취생몽사하리라.

괴로워 때로 주리가 틀리겠지만

길은 없으리라.

 

친구들 생각하면 눈물 난다.

빛나던 눈빛과 팔다리들

소주병 곁에서 용접기 옆에서 증권사 전광판 앞에서 엎어지고 자빠져

눈도 감지 못한 채 우리는 모두 불쏘시개.

 

오냐 그 누구여

너는 누구냐.

보이지 않는 어디서 무심히도 풀무질을 해대는 거냐.

똑바로 좀 보자.

네 면상을 똑바로 보면서 울어도 울고 싶다.

죽어도 그렇게 죽고 싶다.

 

 한국사전문

 

이 시는 우리를 모두 불쏘시개로 만들어온 한국 사회에 대해 거침없는 어조로 직설적이고 강렬하게 비판하고 있다.(시인의 질타 대상에는 허벅지 살만 불리다가 속절없이 저무는자기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시인에 따르면, 백성들이 굴욕적인 노예의 삶을 살거나 저항하면 주리가 틀리거나 한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또한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시인의 암울한 비판적 판단이다. 하지만 시의 후반부에서 시인은 다음과 같이 다짐한다. ‘우리 모두를 불쏘시개로 만드는 그 무심한 풀무질의 정체, 그 권력의 면상똑바로 보면서 울어도 울고 싶다, “죽어도 그렇게 죽고 싶다는 다짐 말이다. 똑바로 보고자 하는 의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깊숙이 투시하도록 시인을 이끌 것인데, 특히 바짝 붙어서다는 폐지를 모으며 겨우 살아가는 할머니의 삶이 어떻게 신문지처럼 버려지고 있는지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이미지로 드러내고 있어서 주목된다.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상자를 접어 묶는다

몸빼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벽에 바짝 붙어 선다

유일한 혈육인냥 작은 밀차를 꼭 잡고

 

저 고독한 바짝 붙어서기

더러운 시멘트벽에 거미처럼

수조 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 회색벽에

낮고 낮은 저 바짝 붙어서기

 

차가 지나고 나면

구겨졌던 종이같이 할머니는

천천히 다시 펴진다

밀차의 바퀴 두개가

어린 염소처럼 발꿈치를 졸졸 따라간다

 

늦은 밤 그 방에 켜질 헌 삼성 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싱크대와 냄비들

그 앞에 선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

방 한 구석 힘주어 꼭 짜놓은 걸레를 생각하면.

 

 「바짝 붙어서다전문

 

시인은 할머니의 전체 형상을 굽은 허리라는 간결하지만 본질을 찌르는 이미지로 솜씨 좋게 윤곽 잡아 놓고 시를 전개하기 시작한다. 이 시는 폐지 줍는 할머니가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더러운 시멘트 벽에 거미처럼바짝 붙어 섰다가, “차가 지나고 나면/“구겨졌던 종이같이” “천천히 다시 펴지는 사물화 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굽은 허리졸아든 팔순같은 할머니에 대한 비인격적인 표현은, 세상이 그녀가 주은 폐지나 상자와 같이 할머니를 취급하고 있다는 진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폐물로 취급되는 그녀에게 밀차와 같은 사물만이 그녀의 혈육일 뿐이다. 그녀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세상의 낮고 낮은 저바닥에 바싹 붙어서야 하는, 그래서 꼭 짜놓은 걸레와 같이 살아야 한다. 시인은 시의 막바지에 이르러 참았던 감정을 터뜨리듯, 이러한 그녀의 삶에 대해 목이 멘다면서 깊은 비애를 표명한다.

 

하지만 시인은 저 할머니에게서 비애만을 느끼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시집의 서두에 실린 달팽이에서의, “길이 무너지고/모든 소리와 갈증이 다한 뒤에도/한없이 느린 배밀이로/오래오래가는 달팽이의 모습이 그녀의 모습이기도 하다면 말이다. 달팽이는 망해버린 왕국의 표장(標章)처럼/네 개의 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더듬더듬/먼 길을가고 있는 중이다. 달팽이는 나름대로 자기 삶의 왕이었던 것, 그렇다면 달팽이처럼 살아가는 저 할머니 역시 어떤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 아니겠는가. 이에 시인은 저 할머니나 달팽이처럼 낮은 곳에서 오래도록 배밀이하며 자신의 몸을 이끌어가는 삶에서 삶을 지탱해 나가게 하는 잠재적 힘을 발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발견이 김사인 시의 또 다른 출발선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 이 글은 리얼리스트 2015년 상반기호에 실린 밑창에서 부르는 삶의 노래들2장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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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이성혁

1967년 서울 출생. 문학평론가. 문화 다편집동인.

1999문학과창작평론부문 신인상 수상. 2003대한매일신문문학평론 당선. 평론집으로 불꽃과 트임, 불화의 상상력과 기억의 시학, 서정시와 실재,미래의 시를 향하여. redland21@hanmail.net

 

출전 : 웹진 『문화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