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백석 - 눈을 맞고 선 굳고 정한 갈매나무 - 신경림

공산(空山) 2015. 12. 10. 19:09

백석 - 눈을 맞고 선 굳고 정한 갈매나무

신경림(시인)

 

   1

 

내가 백석 시인을 알 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 정기구독하고 있던 한 월간지에 박목월 시인이 연재하고 있던 시 창작 강좌를 통해서이다. 거기 백석 시인의 오리 망아지 토끼여우난골그리고 가 소개되어 있었는데, 나는 단박에 백석이 좋아졌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시를 좋아하게 된 것도 실은 백석 시인으로 인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강좌에 소개된 시집 사슴을 구하려고 노력했지만 시골서 구할 길은 없었다. 그 얼마 뒤에 책방에서 학풍이라는 새로 나온 잡지를 뒤적이다가 거기 그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시가 실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자리에 서서 읽고 나는 너무 놀랐다. '시란 이런 것이로구나.' 아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싶다. 나는 그 시 한편을 다시 읽기 위해서 그 시 말고는 단 한쪽도 읽을 수 없으리만큼 어려운 그 잡지를 사서 한 집에서 학교를 다니던 당숙들이며 족형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사슴을 손에 넣은 것은 대학으로 진학해 서울로 올라와서다. 막 전쟁이 끝나 세상은 여전히 뒤숭숭하고 먹고 살기가 크게 어려운 때였다. 나는 동대문과 청계천 일대의 고서점을 도는 것이 일과처럼 되어 있었는데 그곳에는 서재에서 빠져나온 장서도장이 찍힌 귀한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사슴도 그 책더미 속에 묻혀 있었다. 책의 뒷장과 속표지에 붉은 장서인이 찍힌 것 말고는 말짱했지만, 주인은 가치를 모르고 참고서 한 권 값밖에 받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사슴을 처음 읽던 흥분을 잊지 못하고 있다. 실린 시는 40편이 못 되었지만 그 감동은 열 권의 장편소설을 읽은 것보다도 더 컸다는 느낌이다. 나는 읽고 또 읽었다. 저녁밥도 반사발밖에 먹지 못했으며 밤도 꼬박 새웠다. 그 뒤사슴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꺼내 읽고는 했으니, 실상 그것은 내가 시를 공부하는 데 교과서가 되었던 셈이다. 이렇게 애지중지하던 책을 61년에 잃어 버렸다. 하찮은 사건으로 가택수색을 당해 압수 당한 50여 권의 책 속에 그의 시집도 끼여 있었던 것이다.

 

홍명희의 임꺽정. 이태준의 복덕방. 김남천의 대하. 오장환의 성벽. 이용악의 오랑캐꽃등이 이때 빼앗긴 책들인데 사슴을 빼앗긴 일이 가장 억울했다. 다행히 사슴의 시들은 거의 외고 있었지만. 이 일로 나는 얼마동안 시를 읽는 흥미도 시집을 사는 재미도 잃었다. 생각해보니 60 후반 내가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하기까지 나는 단 한권의 시집도 사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도 서슴없이 내 시의 스승으로 먼저 백석 시인을 댄다.

 

   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

   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팔모알 상이 그 상 우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 만한 이 뵈였다

   아들아이는 범이라고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나와 동갑이었다

   울파주 밖에는 장꾼들을 따라와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

 

   -- 주막전문

 

이 시는 우리 머리에 세 개의 그림을 그리게 한다. 첫째로, 호박잎에다 붕어곰을 싸오는 주막집 아들이다. 그 아들아이는 이름이 범이고, () 고기를 잘 잡고, 앞니가 뻐드러졌고, 또 나와 동갑이다. 말하자면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은 생략된 관계대명사를 고리로 "아들아이"를 수식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 만한 잔"이 놓여 있는 "빨갛게 질()들은 팔모알 상" 하나만으로 극히 인상적으로 그린 주막집 부엌의 모습이다. 빨갛게 길든 팔모알 상과 그 위에 놓여 있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 만한 잔이라는 소품이 그 주막이 그리 막돼먹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효과도 가진다.

 

세 번째는 주막 밖 풍경이다. 주막 울파주(울바자) 밖에는 어미말이 매여 있고 망아지가 그 젖을 빨고 있다. 장짐을 지고 장꾼을 따라온 말이다. 앞니가 뻐드러진 고기를 잘 잡는 주막집 아들아이. 해장국 끓는 냄새, 지짐게질 냄새가 자욱한 주막집 부엌,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장꾼들, 울바자 밖의 질척거리는 길과 말똥 냄새……. 서도의 장날 풍경을 언어로 그린 한 폭의 풍속화다.

 

이 시는 서도 사투리를 골간으로 하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직조하는 토속적 조선 정조를 기초로 하고 있다. 또한 이 시는 우리를 한 세대 이전의 옛 삶의 모습, 인정과 풍속의 세계로 데려가 준다. 그러나 그 표현 양식은 토속적이거나 재래적이 아니다. 우리말에 없는 관계대명사며 도치법 등 서구적 표현방식을 과감히 채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명확한 이미지를 제공하고 집중을 중시한 점에 있어 그는 모더니스트요 이미지스트이기도 하다.

 

    오리치를 놓으려 아배는 논으로 나려간 지 오래다

   오리는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날어가고 나는 동말랭이에서 강아지처럼 아배를 부르며 울다가

   시악이 나서는 등뒤 개울물에 아배의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모다 던져 버린다

   장날 아츰에 앞 행길로 엄지 따러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조르면

   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크다란 소리로

   -- 매지야 오나라

   -- 매지야 오나라

   새*하려 가는 아배의 지게에 지워 나는 산()으로 가며 토끼를 잡으리라고 생각한다

 

   맞구멍난 토끼굴을 내가 막어서면 언제나 토끼새끼는 내다리 아래로 달어났다

   나는 서글퍼서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

 

   -- 오리 망아지 토끼전문

 

이 시 역시 백석 시인의 다른 시나 마찬가지로 서도 사투리에 대한 약간의 예비지식을 필요로 하는 시. "오리치"는 오리창애로 오리를 꾀어 잡는 틀, "아배"는 아버지. "동비탈"은 뚝 비탈, "동말랭이"는 뚝마루. "시악"은 고약한 심술, "엄지"는 어미말, "매지"는 망아지. "*하려"는 나무하러로 읽으면 된다.

 

세 연 중 첫 연은 오리가 주제요 논이 무대다. 오리(들오리)를 잡는 창애를 놓기 위해 아버지는 논으로 내려가서는 영 올라오지 않는데 오리는 날아가 버리고, 화자는 뚝 위에서 아버지를 찾다가 심술이 나서 아버지의 신이며 버선이며 대님을 개울물로 던져 버린다.

 

두 번째 연은 뚝 대신 행길이 무대다. 장보러 가는 장꾼과 장짐을 실은 어미말과 어미말을 따라가는 망아지. 그리고 그것을 보고 망아지를 사 내라고 생떼를 쓰는 화자. 망아지를 향해 건성으로 "매지야 오나라"하고 소리치는 아버지가 인상적이다.

 

셋째 연에서는 다시 장면이 바뀌어 이번에는 산이 된다. 나무하러 가는 아버지의 지게에 지워진 어린 화자, 맞구멍난 토끼굴을 막아서는 아버지와 화자의 숨결 등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시인의 유년시대의 기억을 토대로 한 것일 터이지만, 동화적 시각 없이는 불가능한 시이다. 색깔을 엷게 칠한 담채화 같은 기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산()

 

   산() 뽕잎에 빗방울이 친다

   멧비둘기가 난다

   나무등걸에서 자벌기가 고개를 들었다 멧비둘기 켠을 본다

 

   -- () 전문

 

나는 청시, , 흰 밤, 노루3, 4 행밖에 되지 않는 그의 짧은 시들도 다 좋아하지만 특히 위의 시가 좋다. 이 시를 읽으면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하는 산비탈 밭이 떠오른다. 산과 들이 새파랗게 물든 초여름날 저녁 나절, 멀리 내려다보이는 마을에서 저녁 먹으라고 아이를 부르는 소리도 들리고, 산비에 묻어오는 싱싱하고 비릿한 풀냄새도 난다.

 

산뽕에 빗방울이 치고, 멧비둘기가 일어나 날고, 자벌레가 나무등걸에서 고개를 들어, 멧비둘기 편을 보고 하는, 아주 간단한 내용이면서도 이 시는 산골살이의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재미. 이것이 백석 시를 읽는 또 하나의 재미로, 시를 읽으면서 낯선 서도의 한 세대 이전의 삶을 상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의 시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안고 있는가는 2행밖에 안되는 짧은 시 노루한 편만 더 읽어 보아도 금세 알 수 있다.

 

   산골에서는 집터를 츠고 달궤를 닦고

   보름달 아래서 노루고기를 먹었다

 

   --노루전문

 

산골에서는 집터를 치고(츠고) 달구질(달궤)을 하고 보름달 아래서 노루고기를 먹었다는 것이 내용의 전부이지만 웬만한 독자면 다 이 시에서 "어허야 달구" 하는 달구질 소리, 노루고기와 술에 취한 장정들이 시끌벅적 떠드는 소리, 아낙네들의 수다까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성외(城外)도 그 시 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가 구성지고 애처롭다.

 

   어두어오는 성문(城門) 밖의 거리

   도야지를 몰고 가는 사람이 있다

 

   엿방 앞의 엿궤가 없다

 

   양철통을 쩔렁거리며 달구지는 거리끝에서 강원도로 간다는 길로 든다

 

   술집 문창에 그느슥한 그림자는 머리를 얹혔다

 

   -- 성외전문

 

성문 밖은 어두워 오고, 한 사람이 장에서 도야지를 사서 몰고 간다…… 엿을 받으러 온 사람들도 다 돌아가 엿 궤 하나가 없는 엿도가 앞, 그곳 강원도로 가는 길로 달구지가 양철통을 쩔렁거리며 밤길을 재촉한다…… 그 양철통 속에는 양잿물이나 간수가 들어 있겠지…… 그 성문밖에 있는 술집, 며칠 전까지만 해도 머리를 땋아 내렸던, 창문에 어리는 야윈(그느슥한) 그림자는 머리를 얹었다…… 머리를 얹는다는 것은 기생이 몸을 허락함을 뜻하니 돈 많은 스폰서라도 얻었나 보다……

 

산문으로 풀면 이렇게 되는 터로서, "양철통을 쩔렁거리며" 강원도로 가는 길로 든 달구지와 머리를 얹힌 "술집 문창에 그느슥한 그림자"를 선명하게 대비시켜 그려낸 개화기 이후의 우리 산읍의 풍속도이다.

 

   3

 

평북 정주에서 출생(1912), 오산고보를 나와 일본에 유학한 후 조선일보 기자 생활도 하고 함흥으로 내려가 영생여고보에서 교직 생활도 하다가, 일제말기 만주로 건너가 생활을 위해 측량서기도 하고 세관업무에 종사도 했다는 백석 시인의 연보는 해방후 귀국해서 신의주에 머물렀었다는 것 외에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40초까지는 작품활동도 왕성하게 했지만, 해방 뒤에는 기껏 3편을 발표, 그것도 친구인 허준이 소장하고 있던 것이었다.

 

북쪽에서도 별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활동을 거의 멈추고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그 뒤 북쪽에서 발표한 공무여인숙10여 편의 시와 동화시 집게네 네 형제, 그리고 동화문학의 발전을 위하여등의 작품이 발굴되었다.

 

남한의 정보당국은 그를 월북 작가로 분류, 시집을 금서 속에 포함시켰다.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까 월북한 불순 시인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 손쉬워서였다. 그가 본디 프롤레타리아 시와는 거리가 먼 시인이었던 만큼 숙청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해보거나 판단할 만한 지혜도 성실성도 없는 것이 남한의 정보기관이었던 것이다. 6.25 당시 국군이 평양까지 올라갔을 때 군수를 했다는 등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등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모두 확인할 길 없는 뜬 소문일 뿐이었다.

 

그 뒤 제 6공화국 아래서 약간의 융통성이 생기면서 그의 시집은 해금이 되어 햇빛을 보게 되었고, 이동순 시인이 엮은 백석시전집의 발간(1987)이 계기가 되어 김자야라는 익명의 여성이 나타나 내 사랑 백석이라는 에세이집을 내어(1995) 백석 시인과의 숨은 사랑의 이야기를 털어놓기에 이르렀다. 대원각의 주인 김영한 할머니로 밝혀진 자야는, 그 자야라는 이름도 백석 시인이 수자리간 낭군을 그리는 여인의 심회를 읊은 이태백의 시 자야오가(子夜吳歌)에서 따서 지어주었다고 고백하면서 "당신은 학교의 일과가 끝나기가 무섭게 도망치듯 나의 하숙으로 바람같이 달려왔다. 우리는 새삼 그립고 반가운 마음에 두손을 담쑥 잡았다. 꽁꽁 언 손을 품속에 데워서 녹이려 할 양이면 난폭한 정열의 힘찬 포옹, 당신은 좀처럼 풀어줄 줄을 몰라했다"고 백석 시인이 잠시 내려가 있던 함흥에서의 로맨스를 털어놓았다.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눈과 흰 당나귀와 나타샤라는 순백의 이미지의 아름다운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바로 그녀에게 바쳐진 것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전문

 

 

나타샤는 톨스토이의 장편 전쟁과 평화의 여주인공 이름이지만 북극의소녀의 보통 명사라는 성격이 더 짙은 듯, 흰 당나귀는 프랑스의 시인 프랑시스 잠이 좋아하던 터로서 백석, 윤동주 시인이 다 같이 좋아하던 이미지로,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 그리고 또 '프랑시스잠''도연명''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하고 백석 시인의 다른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도 나온다. 출출이는 뱁새, 마가리는 오막살이. 이 정도의 예비 지식만 가지면 누구나 아름다운 사랑의 시로 읽을 수 있으리라.

 

   4

 

하지만 아무래도 백석 시를 얘기 하면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빼 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렵던 시절 내게 더 없는 힘이 되었던 시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전문

 

아내도 집도 부모도 형제도 없어지고 혼자 쓸쓸한 거리 끝을 헤매던 화자는 목수네 집 삿자리를 깐 방을 얻어 쥔을 붙인다. 그리고는 문 밖엔 나가지도 않고 누워 뒹굴거나 일어나 앉아 질옹배기 북덕불에 손을 쬐기도 하고 뜻없이 글씨를 쓰기도 하면서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려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다가 문득 이 세상은 뜻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 자기를 마음대로 굴려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슬픔이며 한탄 따위는 앙금이 되어 가라 앉고 외로움만이 남게 되는데, 그때쯤 해서는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고, 화자는 화로를 더욱 가까이 끼고 무릎을 꿇어 보기도 한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두워오는 저녁 바위 섶에 외로이 서서 마른 잎새에 쌀랑쌀랑 소리를 내며 하얗니 눈을 맞는 곧고 정한 갈매나무를!

 

이 갈매나무야 말로 백석 시의 모든 시에 관통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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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나무(갈매나무과)

학명: Rhamnus davurica Pall.

영명: Davurian Buckthorn

전국의 산골짜기와 산기슭에서 자생하는 낙엽수. 높이 약 3m. 가지에 가시가 있고 긴 알꼴 또는 버들잎 모양의 잎이 대생하거나 호생함. 이른 여름 노란 풀색의 작은 꽃이 피며 열매는 가을에 둥글고 검은 색으로 여문다. 열매를 '서리자'라 하여 가을에 여문 것을 따서 햇볕에 말려 설사, 이뇨제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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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새를 이곳 대구지방에서는 새라고 하는데, 이 시에서도 억새를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새는 땔감으로 쓰기보다는 주로 초가지붕을 일 때 볏짚 대용으로 쓴다. 볏짚으로 인 지붕은 1년이 지나면 썩고 말지만 새(억새)로 인 지붕은 10년 정도까지도 견딘다. -- 북방족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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