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시

한이나의 「노독路毒」 감상 - 반경환

공산(空山) 2021. 2. 17. 21:40

   노독路毒

   한이나

 

 

   물에 파묻힌 길 찾아 구례 산꼭대기 사성암,

   절로 간 소들

 

   새벽마다 울려 퍼지던 절벽 위의 사원

   사시 예불 목탁소리의 진동과 진폭을

   뜬잠에 자주 들었음이야

   마을 외양간에서 통증을 잊고 위로를 받았음이야

   장마에 둑 무너져 물바다 된, 혼몽 속

   축사 탈출해 장대비 맞으며 오산 자락에 오른

   한 무리 소들,

 

   아랫마을에서 한 시간 뚜벅뚜벅 걸어 왔을까

   간적면에서 문적면까지 이십 리 떠내려가며 헤엄쳐 왔을까

   목마름에 찾던 49 선지식 비로소 약효를 알았는지

   누구 하나 절마당에서 뛰놀거나 울음소리 내지 않고

   얌전히 쉬다가 떠났다,

 

   세상의 한끝에서 마음의 등불을 찾아

   어두워져서야 빈손으로 내려왔던

   사성암 산속의 먼 길,

   굽이도는 구름 길,

 

   소들도 그 어둠을 믿음으로 건넜으리

 

 

   -- 《애지》 202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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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이나 시인의 「노독路毒」은 ‘불교철학의 진수’이며, ‘노독의 미학’이라고 할 수가 있다. ‘노독’이란 이 세상의 삶에서 피곤하고 지친 질병이지만, 그러나 한이나 시인의 ‘노독’은 슬퍼하고 분노하는 노독이 아니라, 모든 슬픔과 분노를 떠난 해탈의 경지라고 할 수가 있다. 죽음은 삶의 절정이고, 죽음은 삶의 해방이다. 죽음은 모든 기쁨과 즐거움도 다 끌어안고, 죽음은 모든 슬픔과 분노마저도 다 받아들인다. 죽음은 만사형통의 길이며, 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에 따라서 그의 인생의 행복이 결정된다.

   “장마에 둑 무너져 물바다 된, 혼몽 속/ 축사 탈출해 장대비 맞으며 오산 자락에 오른/ 한 무리의 소들”의 삶은 성불成佛의 경지일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간적면에서 문적면까지 이십 리 떠내려가며 헤엄쳐 왔을까/ 목마름에 찾던 49 선지식 비로소 약효를 알았는지/ 누구 하나 절마당에서 뛰놀거나 울음소리 내지 않고/ 얌전히 쉬다가 떠났기” 때문이다. 난세는 수많은 영웅들을 만들고, 세계적인 대재앙이나 대사건은 수많은 부처들을 탄생시킨다. 장맛비에 섬진강 둑이 무너지고 절대절명의 위기 속에서 “물에 파묻힌 길 찾아 구례 산꼭대기 사성암”으로 올라갔던 소들은 더없이 고귀하고 위대한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보리수나무 밑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부처와도 같다고 할 수가 있다. “새벽마다 울려 퍼지던” “사시 예불의 목탁소리”를 들으며, “목마름에 찾던 49 선지식”으로 그의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았던 것이다.

   소들은 부처이고, 부처는 시인이다. 「노독」은 한이나 시인이 창출해낸 시적 아름다움이며, 이 세상의 기쁨과 분노와 슬픔과 즐거움을 떠난 해탈의 경지라고 할 수가 있다. “세상의 한끝에서 마음의 등불을 찾아/ 어두워져서야 빈손으로 내려왔던/ 사성암 산속의 먼 길/ 굽이도는 구름 길// 소들도 그 어둠을 믿음으로 건넜으리”라는 시구에서처럼, 사계절의 운행과 윤회사상을 알고 죽음을 받아들이면 이 세상의 그 모든 것을 다 초월할 수 있다.

   시란 아름다움의 결정체이며, 시인이 온몸으로, 온몸으로 창출해낸 아름다움이다. 부처가 된 소들……. 이 소들을 부처로 탄생시키며, 온몸으로, 온몸으로 창출해낸 「노독」. 한이나 시인의 「노독」은 삶의 꽃이자 죽음의 꽃이고, 모든 희로애락이 더없이 아름답고 고귀한 결정체로 피어난 꽃이라고 할 수가 있다. / 반경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