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시

박성현의 「검정은 멀리 갔을까」 평설 - 이령

공산(空山) 2021. 2. 21. 21:00

   검정은 멀리 갔을까
   박성현


   검정은 묵묵히 어두워졌다 바람이 곁에 있으니 침묵도 살얼음 졌다 나는 견딜 수 없이 비좁은 이곳에 플라스틱 화초처럼 꽂혀 있다 사람들이 검정을 휘휘 저으며 빠르게 일어섰다 검정은 흐린 바깥으로 몸을 돌렸다 중얼거리거나 빙그레 웃거나 작은 소리로 부스럭거렸다 화초가 기울며 그 부드러운 입술과 어두운 시야와 거친 표면을 바라봤다 온몸에 달라붙은 검정이 모서리를 감싸 안자 중력이 사라졌다 더 어두워진 검정이었다 미안해요 저 문은 내가 여는 게 아녜요 그 말을 듣자 검정은 모두 약봉지처럼 구겨지며 화초에 얼굴을 묻었다 지하철이 그 비좁은 시간을 묵묵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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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채지각, 견딤의 미학
   이 령


   박성현 시인의 「검정은 멀리 갔을까」는 여타 <객관의 주관화>를 구사하는 많은 시들이 놓치기 쉬운 사유의 보편성을 담보하면서도 어떤 현상에 대해 어설픈 결론을 내리지 않고 삶을 대하는 한 개인의 진중한 심중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어 매력적이며 재독의 힘이 있는 작품이다.
   물체가 빛을 받을 때, 빛의 파장에 따라서 표면에 나타나는 고유한 빛, 이 색깔이다. 다양한 색깔을 지닌 개인들이 모여 혼합된 세상을 이루는 불협화음, 그것을 목도하는 한 단독자(單獨者)의 생에 대한 내밀한 관찰과 무심한듯하지만 결국 따뜻한 호명이 있기에 거듭 읽으면서 골똘해지는 순간이다.
   검정의 내적 음향을 허무, 죽음, 희망 없는 영원한 침묵의 표상이라고 본다면 「검정은 멀리 갔을까」는 마치 ‘필름누아르(film noir)’ 같은 세상을 향해 던지는 시인의 조용한 위무(慰撫)라고 할까? 사실 로큰놀과 펑크세대인 나는 빨강이나 노랑 등 유채색에서 느낄 수 있는 어떤 열정과 광기보다는 검정이 불러일으키는 냉정하고도 도저한 세련됨에 매료되곤 한다.
   검정은 흐린 바깥으로 몸을 돌렸다..(중략)..그 부드러운 입술과 어두운 시야와 거친 표면을 바라봤다
   시인은 시류에 편승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닌 담담한 자세를 견지하며 자신의 자존감을 점검하고 있는 듯하다. 시인의 표현대로 바람 곁에서 침묵도 살얼음이 지게 하는 검정 혹은 감정은 무엇일까.
   중얼거리거나 빙그레 웃거나 작은 소리로 부스럭거리는 검정을 휘휘 저으며 일어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화초는 세상의 무게를 감내하며 마침내 중력이 사라지는 순간을 맞이했던 것일까.
   온몸에 달라붙은 검정이 모서리를 감싸 안자 중력이 사라졌다 더 어두워진 검정이었다 미안해요 저 문은 내가 여는 게 아녜요 그 말을 듣자 검정은 모두 약봉지처럼 구겨지며 화초에 얼굴을 묻었다 지하철이 그 비좁은 시간을 묵묵히 흔들었다
   선택적 출생을 부여받은 이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시인의 표현처럼 검정이 모서리를 감싸 안자 중력이 사라지고 더 어두워진 검정이라 할지라도 저 문은 내가 여는 게 아닌 것. 그러기에 좌절하지 않고 견딤으로 우뚝한 생이기를 바라는, 박성현 시인의 「검정은 멀리 갔을까」가 견지하는 어떤 전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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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령 / 2013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으로 『시인하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