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꽃
서대선
길거리
때 묻은 아이들
집으로 불러들여
잠자리 비워주고
밥그릇
고봉으로 얹어 주시던 아버지
기술 가르쳐
떠나보내며
뒤돌아보지 말라 당부하시던
아버지
박씨 하나
물고 오기는커녕
일자 소식 없는
머리털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
아니라는 친척들의 지청구를
호박 구덩이 거름으로 묻던 아버지
세상 일 밀치고
어느 날 문득 찾은
내 아버지 빗돌 앞에
누군가
놓고 간
마른 꽃다발 하나.
서대선 시인의 「마른 꽃」은 달리 해설이 필요 없을 만큼 쉽게 읽히면서 깊은 울림까지 주는 시입니다. 첫 대면의 느낌도 좋지만 여러 번 읽을수록 더욱 깊은 감동을 주는 시입니다. 해설을 달아서 해설을 주목하고 해설의 느낌을 간직하게 하기보다는, 그저 시를 읽고 또 읽게 하고 싶은 시입니다. 해설을 쓰는 것이 시에 훼방이나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시입니다.
이 시를 떠받치는 두 개의 축은 사실성(reality)과 간결성일 것입니다. 이 시의 주인공인 "아버지"가 서대선 시인의 아버지인지, 아니면 시인이 알고 있는 특정 아버지인지, 그것도 아니면 문학적으로 창작한 아버지인지는 서대선 시인에게 물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런 생각이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실존 인물을 통해서든 창작 과정의 산물이든 중요한 것은 시가 획득한 리얼리티입니다. 문학이 추구하는 리얼리티란 사실을 소재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사실적으로 완전한 사실을 구현한 리얼리티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독자에게 얼마만큼의 리얼리티로 다가갈 수 있느냐의 문제이니까요.
그 리얼리티를 위해서 시를 풀어가는 문체가 간결하고 담백합니다. 주인공의 삶이 그렇고 그 삶을 보면서 느끼는 마음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수사는 리얼리티와 거리가 멉니다. 물론 그 역시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리얼리티의 정신과 감동 앞에서는 간결성이 최선입니다. 꾸밈과 가공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수사는 사실성과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서대선 시인은 사실성과 간결성을 통해서 진실성을 만들어냈습니다. 진실은 이 시가 가진 최대의 힘입니다. 그 진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아련한 감동을 만들어 냅니다. 주인공인 "아버지"가 지니고 있는 묵직하면서도 선 굵은 힘의 감동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하겠지만 지금도 이땅의 어느 구석에는 이런 사람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참된 사람으로서 참된 길을 가고 있는 사람 말입니다. 그 사람은 자식들에게 참된 삶을 본으로 보여준 참된 아버지일 것입니다. 실로 위대한 아버지라 하겠습니다.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는 「무지개」라는 시의 마무리에서 자기 삶의 하루하루가 경건(natural piety)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했는데요. 무지개를 바라보며 노래한 사람으로서 그와 같이 자연을 통해 경건하게 살아가는 날들이 하루하루 이어지기를 소망한 것이 참으로 당연하고 적절하다 싶습니다.
워즈워스의 그런 마음처럼 저 역시도 서대선 시인의 "아버지"를 본 사람으로서 그와 같은 경건으로 내 삶의 하루하루가 이어지기를 소망해봅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남아있는 생각 한 가지를 편안하게 꺼내놓습니다. 「마른 꽃」이 드라마가 되고 나아가 영화로 제작되었으면 좋겠다구요. 삶이 퍽퍽하고 힘들어 감동이 필요할 때 이만한 스토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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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이종섶(시인,평론가)은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 <물결무늬 손뼈 화석>, <바람의 구문론>이 있다.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부천타임즈 <이종섶의 詩장바구니>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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