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시

윤일현의 「나비」 감상 - 유홍준

공산(空山) 2021. 1. 22. 11:08

   나비

   윤일현(1956~ )

 

 

   나비의 삶은 곡선이다

   장독대 옆에 앉아 있던 참새가

   길 건너 전깃줄까지

   직선으로 몇 번 왕복할 동안

   나비는 갈지자 날갯짓으로

   샐비어와 분꽃 사이를 맴돈다

 

   아버지는 바람같이 대처를 돌아다녔고

   엄마는 뒷산 손바닥만 한 콩밭과

   앞들 한 마지기 논 사이를

   나비처럼 오가며 살았다

 

   나비의 궤적을 곧게 펴

   새가 오간 길 위에 펼쳐본다

   놀라워라 그 여린 날개로

   새보다 먼 거리를 날았구나

 

   엄마가 오갔던 그 길

   굴곡의 멀고 긴 아픔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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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라리 부럽다. 바람같이 대처를 돌아다니고 나비처럼 콩밭과 논 사이를 오가던 삶은. 살림살이 고된 내 누이들은 참새의 직선도 나비의 곡선도 아닌 지그재그 갈팡질팡 대형마트 매장 진열대 사이를 오가며 하루 여덟 시간 삶의 발자국을 찍고 있다. 소음 속 기계 앞에 꼼짝도 않고 붙어 서서 내 형제들은 제품을 만들고 있다.

   이 지랄 맞은 자본주의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농경사회에선 그래도 논과 밭을 오가며 발자국을 찍었건만 지금은 대형 매장에서 싸늘한 시멘트 바닥에 하루 종일 비정규직의 발자국을 찍어야지만 살아갈 수 있다. 차라리 '굴곡의 멀고 긴 아픔'을 걸었던 어머니의 발자국이 행복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직장과 집, 학교와 집, 이 다람쥐 쳇바퀴가 결국 현대인의 삶이라면 너무나 끔찍하다. / 유홍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