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이규리
그 슬픔은 팔다리가 없을 테니
온몸으로 말을 했을 것이다
머리를 깨뜨려도 당시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
삼나무길 지날 때 종소리 들렸다
종소리에는 왜 죄의 냄새가 묻어 있을까
몸을 움츠리고
나는 누구를 버린 사람이 되어
숨는 마음이 되어
누추한 마음도 가려주어야 하므로 저녁 여섯 시는 필요하였다
팔을 길게 벌린 나무들이 사람처럼 무서워
잰걸음을 할 때
저녁 새가 소매를 물었다
아무리 해도 다치게 한 것
어두웠던 것
아직 더 가야 한다면 나를 나 없는 곳으로 보낼 수 있을까
남은 소리가 종을 다 떠나면 남은 소리를 떨어보내고 나면
이제 울음도 아껴 사용해야 한다고
다가오는 날들이 말을 한다
―『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202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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