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 - 송종찬

공산(空山) 2020. 9. 11. 06:29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

  송종찬

 

 

   아내의 둥근 가슴을 만지다 보면 낮은 천장에도 어둠을 밝히는 달이 떠올랐다 초승달 보름달 사이로 자전을 하고 파도가 밀물져 들 때 작은 돛을 띄워 달에게로 건너가곤 하였다

 

   구름에 가려져 있다가 밤이면 파란 실핏줄을 드러내는 달 그 달에서 지구라는 별을 바라보면 버찌가 익어가는 엄마 품을 빠져나온 불빛들이 강을 따라 소곤소곤 흘러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내의 젖가슴 사이로 마그마 소리 들리기도 하였다 그런 밤에는 우거진 삼나무 숲에 피어 있을 붉은 열매들이 생각났고 짐승의 피처럼 뜨거워져 짙은 안개 속을 헤집고 다녔다

 

   아내의 둥근 가슴을 만지다 보면 손가락도 어느새 둥그러졌다 창문에 얼비치는 쪽달의 야윈 볼을 어루만지고 바닷가 할머니의 거친 무덤을 쓰다듬고 파도 끝에서는 월식이 시작되었다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2007.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풀에게 - 문효치  (0) 2020.09.29
石魚 - 윤의섭  (0) 2020.09.17
가족사진 - 유자효  (0) 2020.09.09
옹기전에서 - 정희성  (0) 2020.09.07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 하재연  (0) 2020.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