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石魚 - 윤의섭

공산(空山) 2020. 9. 17. 22:18

   石魚

   윤의섭

 

 

   계곡을 돌아나온 바람 끝에 폭포 소리가 묻어 있다
   예민해진 귀는 푸른 물빛을 느낀다

   느지막한 휴일 오후에 걸려온 전화의 목소리는 울고 있었다
   언제부터 외로웠냐고 묻자 이번 생부턴 아니었을 거라며
   수화기를 일세기에 걸쳐 내려놓는다

   물소리는 점점 커졌다
   용케도 폭포가 메마를 철을 피해 찾아온 것이다
   지난 가뭄에 다 말라붙었어도 물길은 지워지지 않아
   사막의 와디 같은 山客들이 여기저기서 합류하고 있었다

   그들은 계류를 따라 세워진 돌무더기에
   돌멩이를 쌓으며 소원을 빈다
   자신들의 운명을 타고 난 별을 옮기는 중이다
   사자자리 황소자리 처녀자리 물고기자리 물병자리가 지상에 그려지고
   돌탑이 높아질수록 소원은 하도 간절하여
   별을 얹는 동안 한 생애가 흘러간다

   그 후로 전화는 다시 오지 않았다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는 알리는 것과 알리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십년을 헤어져 있다가도 한 번 보고 나면 다시 십년을 견딜 수 있는 세속의 情理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아침마다 얼굴을 봐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니까 그럴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달을 주워 온다 달을 손바닥 위에 얹어 놓고 조금씩 사그라져 감쪽같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바라본다 가끔은 엄한 자리에 달을 놓아주기도 한다 미끄러져 달아나는 눈썹달의 지느러미가 흐릿하다 달을 들고 나는 울고 있었던 것이다

   폭포 아래 용소에 石魚가 산다는 소문은 내게 간신히 전해졌다
   실은 물속에 시퍼런 돌덩이가 잠겨있을 뿐이지만
   흐르는 물살을 거슬러 石魚는 상류로 상류로 헤엄치고 있었다
   수 세기를 거슬러 기원전으로
   다시 제 나이만큼의 세월 건너 저 자리로 돌아와 외로운 회향을 거듭하는
   石魚
   온통 푸른 눈물에 잠겨있는
   石魚

 

 

  애지》2008.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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